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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활동가·구미시 생활공감정책참여단대표·선주문학회 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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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지천의 연화2리. 구미와 이웃해 있는 고장이지만 자주 갈 기회가 별로 없는 곳이다. 학창시절엔 대구를 오가며 어쩌다 보게 되는 연화역. 연화. 이름도 곱고 의미도 좋아서 꼭 한번 찾고 싶었던 마을이다. 지금은 연화란 말이 불명이나 무속인의 이름으로 많이 씌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내 추억의 한켠에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로 남아있다.
햇살 좋은 시월 초에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미용과 제빵, 시계와 가전 수리, 방충망 수선 등을 위해 각지의 직능단체, 학교, 사회 봉사단체가 함께 하는 제법 큰 규모의 농촌 봉사활동이다. 이런 활동은 지역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우리도 즐거이 찾았고, 나는 방충망을 수선하는 팀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몇 번 함께하는 동안 곁눈으로 방충망 수선을 배워 이제 독립적으로도 수선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방충망은 모기 등의 해충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직접 찾아다니며 봉사를 해주지 않으면 농촌의 어르신 스스로가 손상된 방충망을 고치거나 교체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한 마을 안에서 수선을 한다고는 하지만 탈부착과 무거운 것을 들고 현장에까지 오가는 것도 보통의 문제는 아니다. 방문 수리를 맡길 경우 수리비도 만만치가 않은 것 같다.
생산된 지가 오래된 제법 저렴한 알루미늄틀은 손상된 것이 많았다. 망은 새것으로 교체하면 될 것이지만, 틀의 모퉁이가 부식되어 떨어진 것은 구멍을 뚫어 고정을 한 다음 망을 바꾸어 단다. 알루미늄틀은 보통 때가 많이 끼어있고, 고무 가스켓도 들러붙어서 묵은 망의 제거도 쉽지 않다. 스테인레스틀이나 하이샤시는 좀 비싸서 그런지 망가진 틀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교체작업도 속도가 나는 편이다. 나는 아직도 내 작업 공구가 없다. 전문적으로 봉사를 다니는 분들은 작업 공구 가방도 멋있어 보이는 데다, 그 안에 갖가지 공구들도 없는 게 없을 정도로 가지런히 잘 갖추어져 있다. 나도 저런 가방을 들고 나를 반겨주는 곳을 찾아 전국을 주유했으면 하는 생각이 금방 머리를 스친다. 롤러를 비롯해서 가위, 칼, 전동 드라이버, 갈고리 등이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면서 순서대로 대기하고 있는 가방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나의 공구가 없으니 더욱 분주하다. 빌려 쓰다가 잠시 놓아둔 가위는 롤러질을 하다가 보면 제 자리에 없다. 대신 칼을 찾아들고 망을 마저 그어 잘라낸다. 칼을 놓고 보면 롤러가 없을 때도 있다.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다가 롤러를 찾아 마무리를 한다. 망과 가스켓(O형 고무 재질로 망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은 공용이므로 몇 개의 팀이 함께 사용한다. 틀에 맞춰 망을 자를 때도 경력봉사자들은 단번에 표가 난다. 바쁘지 않고도 여유있게, 딱 맞게 잘라 내면서 몇 번의 롤러질로 홈을 정리하고 가스켓을 고정하는 마무리작업을 순서대로 척척 해치운다. 나도 이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수리하는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유가 없고 척척이 안된다. 그래도 따라 하는 자신이 대견스러워 손을 바삐 놀려 보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통해 배우거나 얻는 것이 많다. 도시인의 재능기부가 농촌에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피부에 와 닿는다. 이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 손목 시계가 어떻게나 많은지,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어르신들, 목이 부러진 선풍기는 왜 그렇게 많은지 정말 농촌에 살면서도 농촌의 삶을 잘 몰랐던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른바 마을활동가라 자처하면서, 농촌이 무너진다고 외치고 다니면서 정작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이제 새삼 깨달은 느낌이다. 자기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숙련공 즉 장인을 만나 그들의 인생 여정을 들어보는 것은 덤이다. 바쁜 시간과 먼 거리를 마다하고 하루를 기꺼이 내어주는 제빵 장인, 미용 장인, 시계 장인들. 이들의 공통점은 농촌을 위해 적게는 수년간, 많게는 수십 년을 이렇게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점이다. 장인이란 어떤 한 분야에 있어 최고 경지에 이른 전문가가 아니던가. 그들은 곧 명인이요, 명장, 거장들이다. 한국 마이스터 협회에서 마련하여 그들이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찌 장인뿐이랴. 재능기부모임을 준비하고, 또 그 가치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역시 사람을 좋아하고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서로의 존재를 온전하게 만들려는 자세를 발견하게 된다. 또 낯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연화리 주민들의 웃음 머금은 얼굴은 지금 온 나라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우리의 미래상이지 않은가. 요즘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무슨 쓰임새나 숫자로만 상대하는 세태이기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가짐에서 더 큰 울림을 받는지도 모른다.
연화리 마을회관 앞 도암지에는 아직도 연잎이 푸르게 가득하다. 연의 꽃은 연화이지만, 연잎은 연엽(蓮葉)이다. ‘청결’, ‘당신은 아름답습니다’란 꽃말은 그 어떤 흙탕물도 묻지 않는 잎의 성질을 잘 보여준다.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부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상징이란 불교적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한국인들에게 연꽃의 사연은 자못 소중하다. 그러한 마을, 그 연못 옆에 피어난 연인(蓮人)들의 모습은 그래서 각별한 것이다. 자신들의 시간과 명예를 처음 찾은 마을에 아낌없이 부려놓는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잘 어울어진 그곳에 때아닌 연꽃이 아름답게 활짝 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