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문화신문 |
|
|
 |
|
| ⓒ 경북문화신문 |
|
음력 초닷새인 어제, 금오산 서쪽 산자락 위에 뜬 초승달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오른쪽이 둥근 눈썹모양의 초승달 옆에는 금성이 밝게 빛을 발하고 있다. 어쩜 저리 귀여울까. 한참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초승달을 볼때면 나도향의 산문 '그믐달'이 떠오른다. 고백하건데 이 산문을 읽기 전까지 초승달과 그믐달을 구분하지 못했더랬다. 어른이 되어서 '그믐달'을 처음 접했으니 이 얼마나 무식한가.
나도향의 그믐달은 지금 읽어도 좋다.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인가보다. 나도향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길래, 얼마나 한이 많길래, 도대체 얼마나 달을 올려다보았길래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나도향의 '그믐달' 전문을 옮겨본다.
------------------------------------
그믐달
-나도향 《조선문단》1935년 4월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어여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세상의 같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비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쫒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만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나그네가 묵는 객지 방에 비치는 쓸쓸한 불빛)에 정든 님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겨잡은 무슨 한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승달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을 쳐다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만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게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을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적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한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 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