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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학자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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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의 주석에 “주나라 소공 희석이 남쪽 제후국에 있을 때에 감당나무 아래에 머물렀더니, 남쪽 제후국의 사람들이 그 교화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周召公奭 在南國之日 止舍於甘棠之下 南國之人 無不從其敎化焉]”라고 하였다. ‘존이감당(存以甘棠)’이란 구절은 주나라 소공의 고사이다. 주나라 소공은 감당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을 교화하였다. 그가 죽고 나서도 교화를 입은 백성들은 그를 잊지 못해 감당나무에 관한 시를 읊으며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하였다.
存(있을 존)은 才(재주 재)와 子(아들 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마치 어린아이[子]가 자라듯 땅에서 싹이 막 자라는 모양[才]을 본떴다. 이전에 세상이 있지도 않던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얼굴을 내밀며, “나는 존재한다!”라고 외친다.
以(써 이)이는 쟁기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도구를 사용하여[以] 땅을 가는 행위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로써’의 뜻으로 널리 쓰인다. 한자는 실재로 뜻을 가진 실사(實辭)와 뜻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말을 매끄럽게 해주는 조사 등으로 쓰이는 허사(虛辭)로 크게 나뉜다. 以자는 허사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 중 하나이다.
甘(달 감)은 입[口]에 음식[一]을 넣고 있는 모습을 본떴다. 원래는 ‘달다’는 뜻의 ‘sweet’이 아닌 ‘맛있다’는 뜻의 ‘Delicious’로 쓰였던 글자였다. 옛날 먹는 것이 해결되지 않던 때 입에 음식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매우 달고 맛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맛있음을 표현할 때 꼭 단맛이 나는 음식에 비유하여 “꿀맛이다”라고 한다. 단맛이 그 만큼 귀하고 맛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맛에 관해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매운 맛[辛]’은 사실 맛이 아닌 통감(痛感)에 속한다. 때문에 매운 맛이 아는 음식을 맨살에 발라도 입에서 느끼는 느낌과 동일한 느낌이 난다. 소금이나 설탕을 바른다고 해서 결코 그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棠(아가위 당)은 뜻을 결정한 木(나무 목)과 발음을 결정한 尙(오히려 상)이 합쳐진 글자이다. 아가위는 장미과에 속하는 팥배나무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