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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활동가ㆍ구미시 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ㆍ선주문학회 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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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가 되면 누구든 나서서 국가의 이익을 강조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온갖 관습, 법률, 이념과 통념, 상식 등이 동원되어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의 세세한 차이까지 분석해낸다. 헌법상 ‘최고의 통치권자’를 뽑는 만큼 이같은 지대한 관심은 당연한 일이며, 여기엔 수다한 방법론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번만은 정상을 밟으려는 사람이나 그 대열에 선 사람 그리고 뽑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사람들 모두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곧잘 대선은 최고봉 등정에 비유되곤 한다. 어쩌면 이러한 비유를 통해 그냥 지나칠 뻔한 대선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서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사례를 기반으로 대선을 생각해 본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 에베레스트. 많은 사람들은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일을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행위라 말한다. 스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올라간 그 길은 하늘이 허락해야 안전하게 내려올 수가 있다. 또 극한 속에서는 정상적인 분별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고, 생사를 기약하기도 어려운 과정을 선택하는 것이므로 비합리적이라고 말 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에베레스트는 명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로맨티스트 혹은 인류의 불행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을 늘 유혹하고 있다.
에베레스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매력으로 인해 사람들의 야망과 환상에 불을 지르고, 신중한 사람들의 회의懷疑를 쓸어내 버릴 만큼 강렬하다. 그래서 자기 몸에 닥친 고통과 피로를 무시하고 무조건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바람에 종종 심각한 위험이 닥쳐오리라는 걸 예고해주는 징조들도 소홀히 지나친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딪칠 수밖에 없는 딜레마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죽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8,000미터 위에서는 적절한 열정과 무모한 정상 정복열의 경계선이 아주 모호해져서 에베레스트 산비탈에는 절망에 지쳐 쓰러진 영혼들이 즐비하다.
고소 적응훈련 중 동료의 사망 소식은 금방 씻겨나갔다. 우리 대부분은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열병에 사로잡혀 있어 우리 중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차분히 성찰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나중에,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한 뒤 차분히 돌이켜봐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싸늘함과 냉정함, 아마도 이것은 극단적인 등산의 본질을 말해 주는 것이리라.
최고봉의 등정은 셰르파들의 용기와 육체적인 강인함이 성공을 좌우한다. 네팔 인구 2천만 명 중 2만이 채 되지 않는 셰르파 족. 그들이 사는 골짜기들은 너무나 높고 춥고 가파른 벽들로 둘러싸인 탓에 농사짓기가 어려워 일찍부터 티베트와 인도 사이를 넘나들며 장사를 했다. 3~4천 미터에 이르는 고산지대에 살아왔으므로 고도의 어려움에 적응을 잘해 많은 셰르파들은 에베레스트 등반대의 짐꾼과 캠프 보조인력으로 고용된다. 등반대의 정원에 해당하는 열여덟 명 가운데 열두 명의 자리를 두고 셰르파들 사이에선 치열한 경쟁이 붙는데, 이들이 가장 부러워하고 탐내는 자리는 전문적인 등반기술을 지녀 외지의 산악인들과 높은 봉우리를 오를 수 있는 셰르파들의 자리다. 그러나 눈사태로 죽은 셰르파인은 에베레스트에서 죽은 모든 사망자의 삼분의 일이 넘는다고 한다.
얼음 능선 꼭대기에 발을 디디자 거기서부터는 더이상 올라갈 데가 없음을 알았다. 어린 시절 이래 줄곧 꿈꾸고 열망해 온 목표를 막 성취한 순간이다. 한 줄에 죽 엮어진 불교 주문이 찍힌 깃발들을 바람이 사납게 물어뜯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본 그 산의 다른 쪽 사면斜面 아래로 티베트 고원에 해당되는 암갈색 대지가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존 크라카우어는 그 산 정상에 이르면 온 마음이 벅찬 환희로 들끓어 오를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정상은 반환점에 불과했다. 앞으로 길고도 위험스런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암담한 기분에 자축을 하고 싶은 충동같은 건 완전히 사그라들고 말았다.
하산길에 극도의 피로감으로 시간을 지체하다가 어둠에 갇힌 쇼에닝 팀. 계속하여 눈가루와 얼음조각들이 온몸을 후려치는 바람에 결국 길을 잃고 조난당한다. “폭풍을 거슬러 가는 건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어서 우리는 무의식 중에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계속 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들이 밤새 정신없이 헤매고 다닌 일대는 제4캠프와 불과 15분 거리인, 수평으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이튿날 쇼에닝은 극적으로 구조되었지만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누군가가 이들은 어리석은 실수를 연속적으로 저질러 사망했으며 자신은 영리하여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될 경우, 그 사람은 전보다 더 자신을 갖고 덤벼들기가 쉽다. 타인의 과오로부터 배우지 못한 경우이다.
<위의 내용은 마이클 코더스의 『에베레스트의 진실』・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 그리고 MBC 다큐 「아! 에베레스트」를 참고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