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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활동가·구미시 생활공감정책참여단 대표·선주문학회 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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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하나같이 자신만이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적임자라고 말한다. 드디어 피가 마르고 가슴 졸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유권자인 우리 국민들에겐 평가의 시간이 부여되었다. 유권자는 심판관인 동시에 면접관이기도 하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잣대를 가지고 판정을 하게 되면 신뢰를 담보할 수 없을뿐더러 공동체 전체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 하며, 입후보자들의 TV토론은 좋은 면접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원래 말하기와 글쓰기에는 소홀했다. 그러다 보니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는데, 그보다는 아예 토론이 없다시피 한 교육을 해왔다. 외부로부터의 주입을 강조하는 전통적 교육철학이 수업시간에 질문이 필요없는 일방적 풀이만 존재하는 교실로 만들었다. 이러한 수업은 글로든 말로든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없애 버린 셈이다. 서구에서는 학습자의 잠재적 능력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즉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변하거나 의견을 주고 받는 언어교육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인이 ‘말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공적公的 언어 사용에까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번 2차 토론에서 나타났듯이, 원칙을 잃어버린 진행자와 고삐 풀린 후보자들의 일방적인 발언으로 말미암아 토론은 혼란 그 자체였다. 평상시에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다가 요즘같은 시기에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말을 잘 못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가치를 형편없게 만드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는 비단 TV토론 참가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서양 문화권의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말을 잘한다. 많이 배웠다고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어느 분야에 있든지 틀린 말이든 다른 생각이든 자신있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지만 이들의 대화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바탕에 깔려 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할말을 다할 때 말을 잘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대선 후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시종 방백을 하고 있지는 않나 착각할 지경이다. 방백은 독백이다. 자신의 얘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여기고 혼자 중얼거리는 말인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선 그 질문과 무관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사실 여부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듯이 혹은 나만 옳다는 식의 이런 말하기는 대화의 본질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앞으로 정치, 경제, 사회 분야 등에 대한 후보들의 견해를 몇 차례 더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부분을 어떻게 점수를 줄 것인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으면 한다. 국가의 현안을 보는 관점, 쟁점에 대한 질문과 답변 태도, 정확성 등을 토대로 점수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미 각 당에서 나온 정책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닮은 꼴이 많고, 포장만 바꾼 것들도 많다. 애초 전문가들에 의해 다듬어진 정책들이라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체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실과의 괴리가 뻔히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지역마다 다니면서 뿌려놓은 공약이 선심의 냄새가 물씬 풍기거나 지역민의 감성을 극과 극으로 자극하는 것도 많다. 전통시장이나 지역을 몇 번 방문한다고 해서 그곳에 얽힌 현안을 해결할 순 없다. 그러므로 후보들을 가장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TV토론이다. 앞으로 전개되는 21일, 25일, 3월2일 토론을 반드시 보고 ‘얼마나 신뢰를 주는가’를 바탕으로 ‘말하기’를 평가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놓쳐선 안 되는 문제들이 또 있다. 국민의 화합을 위해 상대방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치유할 것인가, 혹은 주민의 삶과 무관한 건축 사업이나 허울 좋은 기관유치보다는 지역의 실정을 통계적으로 접근하여 어떤 방법으로 지역의 총생산이나 1인당 지역 총소득을 개선할 것인가 하는 것을 관심있게 볼 일이다. 우리는 후보자에게서 정답을 듣고자 한다. 꼭 정답은 아니더라도 어떻게 정답에 가깝게 가는가 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한다. 유권자는 누구에게 이끌려 나온 수동적인 면접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판단해야 한다. 진영의 논리나 일시적인 분노로 사람은 바꿀 수 있을는지 몰라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후보자에게 공정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공정한 태도를 가지고 면접에 임해야 한다. 최근의 올림픽에서 나타난 심판의 자질에서 보듯 편파적인 태도는 모두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지금은 자기표현의 시대인 만큼 그저 보고 듣고 구경할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하여 유권자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