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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학자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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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의 주석에 “《논어》 〈자장〉편에서, 자하가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한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정치인은 나라의 살림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올바르게 나라를 이끌어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優(넉넉할 우)는 ‘넉넉함’이란 그 사람이 가진 인품이나 사람됨을 말한다. 때문에 뜻을 결정한 亻(사람 인)과 발음을 결정한 憂(근심 우)가 합쳐졌다. 여기서 憂는 頁(머리 혈)과 心(마음 심)과 夂(뒤져 올 치)가 합쳐진 글자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언제 비가 내릴지 근심스러운 상황이다.
學(배울 학)은 두 손[臼]으로 새끼를 꼬는 것[爻]을 아이[子]가 배우고 있는 상황을 본뜬 글자이다. 이후 ‘학문을 배우다’는 의미로 뜻이 치중되고 글자 모양도 학문[文]을 하는 사람[子]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斈’이라는 글자를 이체자로 만들었다. 學의 반대자는 敎(가르칠 교)자로, 글자를 잘 살펴보면 왼쪽이 𡥉로 이루어져 學자 가운뎃부분[爻+子]을 이루고 있는 자형과 동일하다. 배움과 가르침은 입장만 다를 뿐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간혹 敎자를 教의 자형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登(오를 등)자는 두 발의 모양을 본뜬 癶(등질 발)과 제사 그릇의 모양을 본뜬 豆(그릇 두)가 합쳐진 글자이다. 제사를 받들기 위해 그릇을 들고 제단을 오르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처음에는 그릇[豆]을 든 손의 모양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부분이 생략되었다. 두유(豆乳), 두부(豆腐)라는 말에 쓰이는 豆는 ‘콩’이라는 뜻인데, 두(豆) 그릇에 콩을 주로 담았기 때문에 생긴 뜻이다.
仕(벼슬 사)는 벼슬하는 사람[亻]인 선비[士]를 이른다. 士(선비 사)자를 간혹 열[十] 사람 가운데 한[一] 사람 정도가 존재하는 것이 ‘선비’라고도 하고, 하나[一]를 들으면 열[十]을 아는 사람이 선비라고도 하지만 모두 엉터리 설명이다. 士자는 갑골문에서는 도끼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처음에는 무사를 의미하였지만, 지금은 무(武)보다 문(文)을 갖춘 사람인 ‘선비’란 뜻으로 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