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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학자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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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의 주석에 “남자는 10살이 되면 바깥 스승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밖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다.’[男子十年 出就外傅而學焉 故 曰外受傅訓]”라고 하였다.
오늘날 교육은 8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대학교육으로 교육이 마무리되지만, 옛날에는 “죽고 나서야 그만둔다.[死而後已]”는 자세로 선비들은 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수양함으로써 내면을 닦았다.
外(바깥 외)는 夕(저녁 석)과 卜(점 복)이 합쳐진 글자로, 저녁에 점을 치는 예외적인 행위를 뜻한다. 보통 점은 저녁에 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를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바깥’, ‘벗어나다’는 등의 의미로도 쓰였다. 占(점 점)자는 점쳐[卜] 묻는다[口]는 의미를 가졌다. 兆(조짐 조)자 역시 卜자가 양쪽으로 나열된 형태로, 여기서 卜은 거북껍질을 구울 때 갈라지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어떻게 갈라지느냐에 따라 길흉을 점쳤다.
受(받을 수)는 두 손[爪+又]로 어떠한 물건[冖]을 주고받는 모습을 본떴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간혹 愛(사랑 애)자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愛자는 사람의 감정을 뜻하는 글자이니 心(마음 심)으로 구성되었고, 또 아래는 발을 의미하는 夊(천천히 걸을 쇠)로 구성되었다.
傅(스승 부)는 亻(사람 인)과 尃(펼 부)가 합쳐진 글자이다. 尃는 실패를 손으로 쥐고 있는 모습을 본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요소로 입고 먹고 자는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때문에 옷을 짜는 일을 전수하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행위를 전하는 사람인 스승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고 고귀하다.
訓(가르칠 훈)은 입에 악기를 물고 있는 모습인 言(말씀 언)과 물이 흘러가는 모습은 川(내 천)이 합쳐진 글자이다. 막힘없이 흐르는 물처럼 잘 소통하라는 의미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