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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기한 체육학박사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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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미에 사는 사람이다. 어느 골짜기 어느 땅에 사람이 산다. 우리가 사는 땅, 동양사상에는 세상을 이루는 구성 요소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삼재(三財)라 하여. 첫째(一)가 하늘(天), 둘째(二)는 땅(地), 셋째(三)는 사람(人)이라 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을 두어, 하늘과 땅을 소통하려 하였다. 이는 인간을 생각하게, 노력하게, 공부(工夫)하게 했다. 또 사람을 무리 짓게 하고, 뛰어난 자를 지도자로 만들어 더 큰 일을 도모하게 했다. 이런 이야기는 인간의 선사와 역사의 스토리다.
우리가 사는 구미(龜尾)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의 산업부문의 역할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구미는 공단, 산업, 이런 이미지를 제외해도 한반도의 역사의 주역이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善山)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구미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삶의 자취를 문화적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구미의 어제를 배우고 오늘을 알고,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고 구미시민의 자존감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지역과 관련된 역사와 인물의 일대기를 조명한다.
구당서(舊唐書)에 황금 까마귀 두 마리가 동방으로 날아 한 마리는 금오산에 다른 한 마리는 계림(경주)에 내려앉았다. 그리하여 계림은 신라의 도읍이 되었고, 금오산은 명산(名山)이 아니라 신령한 기운이 있다 하여 영산(靈山)이라 불리며 신라의 화랑은 금오산을 훈련장으로 사용하였다.
고려편년통록은 통일신라의 신승 도선대사는“삼한(三韓)의 혼돈을 끝내고 천하에 이름을 떨칠 나라를 만들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럼 도선대사가 누구인가? 금오산 대혜폭포에서 보면 도선굴이라는 신비한 자연동굴이 있다. 거기가 그가 공부하고 도를 깨우친 그곳이 아닌가?
역사는 참으로 드라마와 같다. 후삼국 통일 전쟁의 마지막 전투 일리천전투(936년9월)가 구미보와 만나는 선산읍을 거처 흐르는 지류가 바로 일리천이다. 냉산에 지휘소를 두어 한눈에 일리천을 보며 전투를 지휘한 왕건은 퇴각하는 신검, 양검, 용검 견훤의 세 아들을 지산습지 발갱이들에서 “검(劍)”자 돌림 삼형제의 권력의 근원인 군권을 뿌리째 뽑았다 하여 발검(拔劍)들; 발갱이들로 불린다. 예언가의 수행(修行)에 땅에서 예언을 완성한 것이다.
통일된 고려국은 한반도의 이름 KOREA가 되었고, 지금에 이른다. 이 고려는 만고의 충신이며 대학자인 야은(冶隱) 길재 선생을, 고려를 이은 조선은 사육신 단계(丹溪) 하위지, 임진왜란 천생산 의병장 곽재우,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왕산허위(1855~1908)선생에 이르는 우리 구미를 대표하는 조선조의 인물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박정희 대통령이 빠질 수 없듯이 구미의 근현대사 또한 그렇다. 단군께서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을 때도, 광개토태왕께서 요동과 만주벌판을 내달릴 때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을 때도, 일제강점기를 끝내는 그때도 “모두 우리는 배가 고팠다.”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5000년 역사의 숙제! 배고픔을 해결한 박정희 대통령에 이르는 인재의 땅 구미지역 위인의 정신문화를 따라가 본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역사를 바로 알고 그 시대의 인물에서 교훈을 찾아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로 답할 것이다. 결국엔 사람(人)이다. “문화란 사람의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필자는 그들이 애정 어린 손길로, 때로는 치열하게 만들어 온, 문화적 온기와 에너지를 소환하여 지역민의 자존감 향상을 도모하고, 역사는 울림 오늘은 어울림 내일은 열림이 되는 문화적 선순환을 가시화하는 노력은 물론, 민족문화와 구미지역문화의 중흥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정기한박사님의 글을 읽어면서
구미인으로서 위대한 자긍심을 갖게 합니다.
구미는 인물의 땅 성공의 땅 위대한 땅이라고 느끼게 합니다.
역사를 알고 역사를 교훈 삼아 미래를 열어 가야 한다고 하는데
지역에 살면서 지역의 역사를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연재에 기대하겠습니다.
02/01 18:36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