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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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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전시나 공연을 볼 때 큰 행복감을 느낀다.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경주 대릉원 일대에서 진행된 미디어아트 ‘대릉원 녹턴’이 그랬다. 빛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일찍이 알았지만 이 정도의 퀄리티가 있을 줄은 몰랐다.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 건물의 외벽에 다양한 콘텐츠 영상을 투사하는 것)가 건물 외벽이 아닌 고분에서 펼쳐질 줄이야. 인공적 구조물을 추가하지 않고, 고분의 구조적 특성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것이 특히 맘에 들었다.
천마총은 1973년 발굴됐다. 해방 이후 우리 손으로 신라 고분을 발굴한 첫 사례였다. 게다가 천마총에서 화려한 장식의 금관과 신라 유일의 회화작품인 천마도가 발견돼 신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한국 고고학 발굴 및 활용에 눈뜨게 된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천마총 발굴은 박정희 정권이 1971년 경주지역을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면서 이뤄졌다. 애초 계획은 황남동 왕릉지구를 정비하면서 가장 큰 제98호분(황남대총)을 발굴, 복원해서 내부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황남대총은 신라와 경주는 물론이고 국내를 통틀어서 가장 큰 고분이기 때문. 하지만 당시 발굴기술도 미진했고, 경험도 부족했기에 예행연습으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제155호분(천마총)을 먼저 발굴했다. 약 8개월간에 걸친 조사를 통해 부장품 11,526점이 출토됐다. 출토유물 가운데 신라 금관과 자작나무 껍질인 백화수피를 이용해 만든 말다래(말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부속품)에 그려진 한 쌍의 천마도가 관심을 끌었다. 특히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생생한 천마도는 신라 벽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당초 제155호분으로 불렸던 고분이 천마총으로 명명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천마총 발굴과정이다. 올해로 발굴된 지 50년이 됐다. 문화재청, 경주시 등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릉원 일원에서 지난 4월부터 12월까지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대릉원 녹턴'이다. 행사가 끝나기 3일 전, 더는 미룰 수 없어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무조건 경주로 달렸다. 사람이 적은 평일을 고집했기에 좀처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거대한 봉분들이 구름처럼 이어진 대릉원은 그냥 보아도 포근하고 편안한데 미디어아트로 흥미와 예술성까지 더해주니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밤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뜻을 가진 녹턴처럼 밤에 어울리는 관광지로 변신했다. 특히 핫스팟인 목련나무 양 옆의 두 개의 고분을 눈으로 형상화한 미디어 파사드는 파격적이었다. 커다란 두 눈이 깜박거릴 때마다 고분이 열렸다 닫히는 것 같다. 고분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화려한 영상에 압도되어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대릉원의 밤은 현재와 과거의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동시에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화려한 영상과 쏟아지는 조명들로 신라, 경주의 밤은 빛났다.
돌아오는 길에 구미지역의 낙동강 동쪽 구릉 지대에 분포되어 있는 해평면의 낙산리 고분군을 떠올렸다. 3~6세기경의 가야와 신라시대의 고분군으로 무려 205기가 확인되지만 제대로 보존,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미 2공단에 소재한 황상동 마애불은 또 어떤가. 공장에서 나오는 소음과 진동으로 불상에 균열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1980년 초반에 조성된 2공단과 고려시대에 조성된 마애불 중 어느 것이 더 지속 가능한가.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천마총을 두고 경북도지사는 앞으로 100년을 넘어 1000년의 시간을 이끌어갈 소중한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구미는 늘 경제 논리에 밀려 문화재 보호에 소홀했고 소홀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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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행사인 줄 알았다면 갔을텐데…아쉽습니다.ㅠㅠ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봅니다.
06/16 00:29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