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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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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가 무을농악을 보존하기 위해 시립농악단 창단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창단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시립농악단 창단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 1월 김낙관 시의원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무을농악을 보존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농악단 창단을 제안하면서부터다. 이후 5개월 동안 구미시는 광명과 천안, 남원시립농악단을 벤치마킹해 창단에 따른 운영 및 소요예산을 검토했다. 즉, 감독 1명, 단무장 1명을 포함해 총 25명으로 구성하고, 매년 인건비 4억 7천만 원을 포함해 시설물, 악기, 의상 등 창단 초기 소요예산을 7억 2천 만 원으로 책정했다. 단지 창단을 염두에 둔 준비과정이다. 시의원의 발언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기본 계획수립 용역이나 시민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창단을 준비할까. 창단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데도, 매년 4억 7천만 원의 시민 혈세를 쏟아붓는데도 시민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다.
게다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립예술단을 창단하면서 실효성에 대한 분석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구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시의원이 시립농악단 창단에 대한 기대효과를 묻자, 문화예술회관장은 물론 담당계장도 답변을 못했다. 준비과정의 소홀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무을농악을 보존한다는 명분만 있을 뿐 시립예술단으로서의 운영 및 목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시립농악단원 구성에 있어서도 무을농악을 하고 있는 지역의 특정 풍물예술단을 중심으로 꾸려질 것으로 알려져 공정성의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알려진 내용이 사실이라면 무을농악 상쇠를 맡고 있는 예술단장이 시립농악단 감독을 맡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내실 없는 명분과 특정 조직에 더 이상 시민의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무을농악은 무을면의 여러 마을에서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다가 연행주체의 교체과정을 거쳐 현재 무을농악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200~300여년 전 무을면 상송리에 있는 수다사에서 도를 닦았던 정재진 승려가 마을 사람들에게 풍물을 가르치면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시기별 연행주체를 보면 1960년대 물골(무을면 무이리)농악대, 1970년대~1980년대 딱밭골(무을면 안곡리)농악대, 1990년대 무을풍물단, 2000년대 이후에는 무을풍물보존회와 무을농악보존회가 전승을 주도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무을농악이 ‘군사굿’으로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이후 지역의 한국전통연희단체인 한두레마당예술단이 전국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무을농악은 군사굿’이라고 소개하면서다. 빗내농악의 ‘군사굿’ 유입 등의 문화재 지정 과정을 거치면서 무을농악의 성격과 기원에 관한 담론들이 새롭게 정립됐다. 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수다사에 수만 명의 승병이 주둔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군사굿’, ‘불교농악’과 접목해 ‘승군전투농악’으로 고착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한두레마당의 여러 활동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지정(2017년)과 함께 무을농악이 ‘승군전투농악’으로 전국적으로 퍼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물골음악을 원전으로 삼은 무을농악은 일반적인 농악의 성격인 모의농사굿 형태에 가깝다는 학자의 견해도 있다. 어쩌면 전승(필요)을 위해 만들어진 전통인지도 모르겠다.
시립무용단을 창단해야 무을농악을 보존할 수 있다는 명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시립예술단의 본질은 시민들의 문화향유에 있다. 젊은 예술인(농악)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을농악보존회가 있는데 굳이 무을농악 보존을 위해 시립농악단을 창단할 이유는 없다. 경기도립무용단처럼 무용단 내에 풍물팀을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산 절감은 물론 무용단의 공연도 풍성해질 것이다. 또 무용단 풍물팀과 무을농악보존회를 중심으로 무을농악을 전승·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립농악단 창단은 보다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