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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수 한학자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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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주석에 “창힐(蒼頡)이 글자를 만들었는데, 하·은·주 삼대(三代)에 서로 증감이 있었으며, 진나라의 예인(隸人) 정막(程邈)은 예서를 만들고 동한의 두조(杜操)는 초서를 만들고 위나라의 종예(鍾繇)는 소예(小隸)를 만들었으니, 소예가 바로 지금의 해자(楷字)이다.[蒼頡造書 三代互有損益 秦隸人程邈 作隸書 東漢杜操 作草書 魏鍾繇 作小隸 今楷字也]”라고 하였다.
杜(막을 두)는 이 글자는 뜻을 결정한 木(나무 목)과 발음을 결정한 土(흙 토)가 합쳐진 글자로, 원래는 ‘팥배나무’의 뜻이었다. 이후 전의되어 ‘막다’는 뜻으로 주로 쓰였다.
稾(볏짚 고)는 발음을 결정한 高(높을 고)와 뜻을 결정한 禾(벼 화)가 합쳐진 글자이다. ‘稿’의 자형으로 쓰기도 한다. 高는 높은 건물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亭(정자 정), 商(헤아릴 상), 京(서울 경) 등의 글자도 모두 高와 동일하게 높은 건물의 모양을 본뜬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禾는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본떴다. 이 글자와 비슷하게 곡식의 모양을 본뜬 來(보리 래 /지금은 ‘오다’는 뜻으로 주로 쓰이지만 원래는 ‘보리’의 뜻이었다.)자가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丿], 보리는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꼿꼿이[丨] 서 있다.
鍾(종 종)은 뜻을 결정한 金(쇠 금)과 발음을 결정한 重(무거울 중)이 합쳐진 글자이다. 金은 녹인 쇳물을 부어 일정한 모양을 만드는 거푸집의 모양을 본떴다. 여기서 金은 오늘날 말하는 강철[steel]이 아닌 청동을 이른다. 重은 긴 나무막대기에 무거운 짐을 묶어 놓은 모양을 본떴다. 갑골문에서는 東(동녘 동)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가진 글자이다.
隷(종 예)는 지금은 자형이 조금 바뀌었지만 발음을 결정한 柰(어찌 내)와 ‘다다르다’는 뜻을 가진 隶(미칠 이)가 합쳐진 글자이다. 隶는 짐승의 꼬리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을 본떴다. 逮(미칠 체)도 이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