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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모사곡동 전경(드론 촬영, 상모사곡행정복지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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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봉 아래에 몇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상모동, 사곡동, 임은동, 오태동이 바로 그곳에 있다. 각 마을의 이름은 각각 내력이 있고, 모두 옛 사람들의 문집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먼저 상모동과 사곡동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상모 사곡동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1914년 7월 15일 구미면 상모리, 사곡리로 개칭
1978년 2월 15일 구미시 승격, 상모동과 사곡동사무소 개소
1999년 3월 2일 행정동 통합, 상모사곡동사무소 개소
2021년 11월 29일 상모사곡동행정복지센터 신청사 개청
원래의 모립곡(謀立谷)이 현재의 사곡(沙谷)과 한마을이었던 것으로 비가 오면 낙동강이 범람하여 모래밭이 되니 이곳 방언으로 모립곡(謀立谷) 또는 실(室)이 모래와 결부되어 모래실이라 불리면서 법정동으로 분리될 때 모래실은 한자 사곡으로 표기되었다.
윗쪽에 위치한 모입곡(실)이라 하여 상모(上謀)로 표기되어 사곡동과 상모동(上謀洞)이던 것이 일제가 상모(上謀)를 상모(上毛)로 고쳐 쓴 것으로 추측되며, 또한 조선조 단종(端宗)께서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니 노산군(魯山君)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모노곡실(慕魯谷室)이라는 일설도 전한다.
상모동이 배출한 근대의 인물로는 시일야방성대(是日也放聲大哭)으로 널리 알려진 위암 장지연(張志淵, 1864~1921) 선생과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 있다. 잘 살펴보면 더 많은 인물들이 상모와 사곡동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모동 사곡동은 내 어릴 때 뛰놀던 놀이터이다. 효자봉 주변의 모든 골짜기에는 온갖 산나물이 가득해서 춘궁기를 때우는 일등공신 노릇을 하였고, 특히 다래가 흔했는데 더덕, 잔대, 도라지는 지천으로 넘쳐났다. 상모동 백운재(白雲齋) 뒤에 이르면 넝쿨딸기 밭이 있었는데, 그 밭의 상큼한 딸기는 봄에서 여름까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그 시절 농촌 아이들의 훌륭한 간식이 되곤 하였다.
상모 사곡동의 효자봉은 금오산 줄기에서 내려온 산의 봉우리이다. 금오산 정상에 자리 잡은 주봉인 현월봉(懸月峯)에서 최근 후망대(堠望臺) 3글자가 발견되었다. 수 많은 선비들과 현인군자, 문인, 지사(志士)들이 후망대에 올라 시를 지었다. 그 가운데 뛰어난 작품들도 많으며, 후망대만으로도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낼 정도이다.
현월봉 약간 아래의 약사봉(藥師峰)에서 시작된 산줄기를 따라 형곡동 전망대와 형곡동, 열녀봉을 거치면 바로 효자봉에 이르는 것이다. 효자봉 아래에 자리잡은 마을이 바로 상모동과 사곡동이다.
상모동에 있는 계곡, 지금 박정희 기념관과 새마을테마공원이 있는 곳에 자리한 계곡을 옛 사람들은 운계(雲溪), 즉 “구름계곡”이라 부르고, 일반인들은 “망태골”이라고 한다. 망태골 골짜기에는 일급수에만 산다는 가재가 너무나 많아서 사람들이 물가에 들어서면 흩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늦봄과 여름에는 반딧불이 온 들판과 아늑하고 낮은 개울을 어지럽게 수놓았고, 가을이면 머루 다래가 온 계곡에 가득하여서 손만 뻗으면 누구라도 쉽게 빈 바구니를 채울 수 있었다.
오늘은 처음이라 중국의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 779~ 843)의 시를 소개한다. 제목은 “심은자불우(尋 隱者 不遇)”라는 시가 있다. “숨은 이를 찾았는데, 만나지 못했네.”
松下 問 童子(송하 문 동자)
言師採藥去(언사 채약 거)
只在此山中(지재 차산 중)
雲深不知處(운심 부지처)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가셨다고.
이 산에 계심은 분명한데,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