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입구에서 커다란 선돌과 마주한다. 수류우향水柳寓鄕, 잃어버린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글귀다. 그 마음을 각골하듯 길이 잊지 말라고 돌에 깊이 새겼다. 표석은 묵묵한 표정으로 낙동강을 굽어본다.
일선리 태조산 기슭에는 긴 세월을 견디어 온 고색창연한 고택들이 자리 잡았다. 고택은 숱한 성상을 겪으면서 자기만의 기품을 품었다. 조상의 손길이 담긴 흙벽과 대청마루, 문살, 기둥, 섬돌 등 가벼이 만든 것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멈춘 듯 텅 빈 골목을 걷는데, 까치 한 마리가 깍 까악 깍 정적을 깬다.
일선리 고택은 고향을 떠난 집이다. 임하댐 수몰 지구에서 옹기그릇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옮겨왔으나 수많은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길은 가져올 수 없었다. 그래서 고택 골목이 바둑판처럼 반듯한 것일까. 만령초당, 대야정, 삼가정, 용와종택 및 침간정, 수남위종택, 임하댁……, 고택들이 서로의 살갗을 비비며 섰지만,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이어지는 골목이 어색하다.
고택 마을은 온기가 사라졌다. 한옥 마을에서 자란 자식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 집을 뒤로하고 대처로 떠났다. 집을 두고 떠나지 못한 종가의 장손은 굽은 허리로 고택을 돌보며 역사를 일군다. 또 다른 종가의 부부는 쓸쓸한 집에 온기를 채우기 위해, 여행객에게 전통문화체험 공간으로 내어준다.
고택이 500년 역사를 이고 처음 지어진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낙동강을 거슬러 과거의 시간으로 오른다. 집은 산과 강, 바람을 바라보거나 등지고 자연스럽게 길을 거느린다. 길은 산을 에둘러 마을로 든다. 마을은 만고풍상을 견디느라 뒤틀린 고목에 붙어 늘어진 나뭇가지로 에워싸여 의연한 기품을 자아낸다. 끝없이 펼쳐진 솔숲 사이로 흐르는 솔 향이 문화재 마을을 적신다. 동네 안에서는 고택에서 풍기는 저마다의 색다른 향기와 역사의 발자취 담은 흙내가 훈훈하다.
1987년 국가에서 안동 임하댐 건설사업을 하였다. 500년 세월 동안 집안 대대손손 몸담았던 집이 임하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수몰민은 ‘고향 집을 깊은 물속에 처넣고 조상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할 것인가.’ 하소연하며 끝까지 벋대었으나 공사를 막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로 모두 옮겨왔다.
문화재가 되려면 첫 번째 원칙이 있다. ‘처음 만들어진 장소에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규정 때문에 처음에는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실향失鄕이라는 뼈아픈 사연이 냉정한 법의 가슴을 울려 특별히 예외를 두었다. 후손들은 문화재를 통째로 옮겨 보존할 장소를 찾아서 안동을 떠나 구미 태조산 기슭에 이른다.
태조산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왕건은 후백제와의 팔공산 전투에서 신숭겸 장군을 비롯한 여러 장수를 잃었다. 그러나 퇴각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어 냉산에서 후백제를 몰아내고 승리의 깃발을 꽂아 통일 대업을 이루었다. 그 이후로 냉산은 태조산이라고 불리었다.
전주 유씨의 유柳가 ‘버들 류’ 자이다. 그래서 그들은 버드나무가 사는 낙동강이 굽이치는 강가에 삶터를 잡았다. 이전에도 강변에 살림살이를 하다가 고향을 물속에 던져 실향민이 된 사람이지만 버들은 물가에 살아야 한다는 문중 관습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유씨는 또다시 물새가 강기슭을 찾듯이 일선리 강가를 찾아들었다.
실향민의 애끓는 삶이 물가에 꿰맞추어 세워진다. 삶터가 정해지자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지은 옷을 뜯듯이 기와부터 서까래, 나무 기둥, 문짝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가름하였다. 고향에서 풀어헤친 집은 새로운 터에 다시 붙였지만 곰삭아 웅숭깊어진 정취까지 재현하지는 못했다.
고택은 온종일 낙동강과 눈을 맞춘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물문이 열리고 먼 산의 깊은 그리움이 물빛에 어린다. 가는 모래알이 물살에 떠밀려오는 소리에도 귀를 연다. 연어가 물길을 거슬러 오르듯이 붉은 햇살 담긴 깊은 물속 고향으로 치달리고 싶다. 해 질 무렵 뿌옇게 강가에 서릿발이 앉으면, 외로움이 고요하게 때론 거칠게 맞선다.
알고 보면 나도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다. 성인이 되어 밥을 해결해주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내가 사는 구미는 직장을 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정착한 곳이다. 이전에 살던 지방의 말씨나 문화는 같은 듯 달랐다. 고향과의 거리도 가까운 듯 멀었다. 어떤 이에게는 어설픈 잡을손 내밀고, 또 다른 이에게 손사래는 거두면서 이웃과 동료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사이에 떠나 온 고향은 도시화 물결에 휩쓸려 아파트 밑으로 깔렸다.
우리는 모두 산업화와 도시화에 수몰된 실향민이다. 도시민 기억 속의 풍경은 바쁜 일상에 매몰되거나 전자기기 속으로 사라졌다. 도시의 실향민은 빽빽한 빌딩 숲의 거친 삶을 닮아간다. 그러다 보니 꼬불꼬불 고샅길에서 만나는 별빛이 그립고, 잡초 더미에서 옹송그리는 자연의 소리에 연연한다. 주말이면 산으로 강으로 길 떠나 바람을 베고 눕는다. 잃어버린 무엇에 대한 향수로 물멍, 불멍, 쉬멍, 걸멍이라고 이름 지어 고향을 그리는 것은 아닌지…….
골목길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쇠한 실향민의 넋두리에 긴 해가 자빠진다. 고향소식 그리워 40년이 지난 지금도 꿈속에서 고향 땅을 이리저리 바장이다가 잠에서 깨어난 적이 몇 번이던가. 산자락의 간지러운 바람 속에 고향 소식 담겨 있으려나 눈을 부라리고, 낙동강 물결에 흘러든 고향 노래 들어보려 귀 기울인 날은 몇 날이던가. 노인의 눈에 눈물이 갈쌍갈쌍 고인다.
저물녘, 골목이 고택 체험에 든 아이들로 왁자하다.
“할아버지, 우리 이 동네에서 살고 싶어요.”
노인의 얼굴에서 멈추었던 시곗바늘이 움직이고, 고택 마을은 긴 그리움에서 깨어난다.
/서옥선(ls8212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