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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춘화(chun4171@hanmail.net)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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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봄이 왔다. 새벽 출근길이 환해지고 있다, 여기저기 작은 싹들이 밖을 살피는 듯 살며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바람이 좀 따스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여기저기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산수유가 노란 꽃을 터트리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개나리가 뒤따라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여기저기 분홍 진달래가 피고 꽃망울을 머금었던 벚꽃들이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벚꽃 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도 많고 주차할 곳도 부족해 어려움이 있지만, 사람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긴 겨울을 무사히 지나온 사람들을 응원하는 듯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가지에 꽃망울이 맺히고 황홀한 꽃을 피우는 나무의 모습이 신비롭게 여겨지기도 한다.
벚꽃이 필 때면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던 때가 생각난다. 뒤늦게 공부를 하겠노라고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공부도 때가 있다고 하는데 손을 놓은 지 오래된 터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고사 기간에는 늘 벚꽃이 피었다. 공부한다고 도서관에 있으면 꽃을 보며 행복에 젖은 사람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성인강좌도 접할 수 있었다. 어느 해 우연히 듣게 된 강좌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배움의 열정을 보게 되었다. 강사님께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대학 공부를 권했지만, 아이들도 어리고 형편상 엄두를 내지 못해 꽁꽁 싸매 두었다. 그러나 열정은 쉽게 사그라들 줄 몰랐다. 두어 해가 지나 용기를 내어 싸매어 두었던 보따리를 풀었다. 주변에서는 쉽지 않은 길이라며 말리기도 했고, 정 공부가 하고 싶으면 일반 대학교로 가기를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사정상 나에게는 방송통신대학교가 좋을 것 같았다.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나니 설렘과 불안함이 함께 했다.
대면으로 하는 수업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 방식이기 때문에 낙오하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는 것은 좋지만, 중간에 포기한다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격통보를 받고 나서도 등록일까지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러나 지금 하지 않으면 더 큰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청소년교육과를 선택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였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지긋한 분들도 있어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관한 전반적인 안내가 진행되었다. 낯선 용어들도 있어 어렵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뿌듯하였다.
혼자 하는 공부는 힘드니 함께 모여서 하면 좋다는 선배님들의 조언에 따라 모임을 만들었다. 나이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여섯 명이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진도에 맞춰 공부하고 시험준비도 하였다. 서로 고민도 나누고 즐거운 일도 함께하며 동기들과 서로 정을 나누게 되었다.
학교 공부는 신세계였다.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기간에 아침부터 서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배우는 것은 좋은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외우는 것은 참 힘들었다. 낯선 용어들, 사람 이름들, 이론들을 외우느라 머리를 싸매었다.
한참 책과 씨름하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무슨 일인가 내다보니 여기저기서 활짝 핀 벚꽃 구경을 하느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자며 동기들과 밖으로 나갔다. 언제 이렇게 꽃이 피었나? 눈부시게 피어난 꽃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것도 잠시, 시험이라는 부담감으로 마음을 꽃에 둘 수 없었다. 그렇게 네 번의 봄을 보내고 무사히 학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졸업 후 동기들은 십여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벚꽃이 필 때면 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이야기를 한다. 그때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벚나무도 저절로 꽃을 피울 리는 없을 것이다. 온몸으로 겨울을 참아내고, 꽃망울을 틔우며 꽃을 피울 때를 기다리고, 때가 되었을 때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웠을 것이다.
만개한 벚나무를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내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그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지 않을까. 온 힘을 다해 살아내면 나만의 꽃을 만개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기꺼이 태풍 몇 개를 품으며 살아가 보자. /윤춘화(chun4171@hanmail.net)
※본 기고문은 지역의 수필 문학인으로 구성된 '금오산수필문학회' 회원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