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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고]봄 마중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4월 12일
↑↑ 이진숙(jin6402@hanmail.net)
ⓒ 경북문화신문
살랑대는 봄바람 따라 아파트 주변 공원을 거닌다. 금빛을 머금은 따사로운 햇볕, 손주의 손바닥을 닮은 연두색 나뭇잎, 나무 사이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둥근 그네에 앉아 마치 춘향이라도 된 듯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린다.

화사하게 다시 찾아와 준 이 봄을 어떻게 맞이할까. 어쩜 저리도 고울까, 잎사귀 사이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들의 환한 미소가 메마른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봄이 오는 길목을 따라 바구니를 들고 나가본다.
 
동네 어귀에 아직 건물을 짓지 않은 빈터가 많이 있다. 어디선가 봄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쑥이 제법 자라 있다. 반가운 마음에 쪼그리고 앉아 쑥을 뜯기 시작했다. 바구니에 담긴 쑥에서 봄의 향기가 가득 차오른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봄 처녀라도 된 듯 가슴이 설렌다. 가족들에게 쑥떡을 만들어 봄 향기를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에 설레던 마음은 한층 더 부풀어 오른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여린 몸으로 뚫고 올라온 쑥이 참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어느새 바구니엔 쑥이 한가득 쌓여간다. 가시덩굴에 걸려 다리에 긁힌 자국은 꽃물이 들었다. 아픈 것도 잊은 채 봄나물 뜯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배꼽시계가 울리고서야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꽃 대궐이 펼쳐진다. 꽃길을 걸으며 나의 앞날도 이런 꽃길만 펼쳐지길 염원해본다. 머리 위엔 따사로운 햇볕이 들어 공기마저 달콤하다. 그림자와 한가로이 걷는 이 시간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길가에 가로수도, 사람들 옷차림에도, 들판에 나온 아낙들의 몸짓에도 모두 봄의 향기가 느껴진다.
 
삼십여 년 전 새색시 시절, 시어머니께서 쑥버무리를 좋아하신다기에 쑥을 뜯어 쑥버무리를 만들었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께 드리려고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서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심장마저 쿵쾅쿵쾅 요동을 친다. 이 길은 남편과 늘 다니던 길이었다. 초보운전이라 그런지 혼자 고속로를 운전할 자신이 없어졌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방망이질해대는 심장 때문에 고속도로 입구에서 차를 돌리고 말았다. 그때 어머니께 쑥버무리를 못 드렸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기억이 살랑대는 봄바람을 타고 되살아난다.
 
쑥떡을 만들어 친구들과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봄 향기를 전해주었다. 손수 뜯어 만든 떡은 그냥 사 먹을 때보다 더 귀하게 느껴진다. 작은 것이지만 주는 즐거움에 여기저기 나누다 보니 남는 게 없다. 다음날 다시 쑥을 뜯으러 나갔다. 쪼그리고 앉아 쑥을 뜯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엄청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갱년기 증상으로 한동안 잠을 설쳤는데, 잠도 그렇게 꿀 맛있을 수 없다. 즐거운 노동의 결실로 오늘 저녁 식탁은 향긋한 봄 향기로 풍성하다.
 
어느 시인이 “봄은 저녁에 온다.”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봄 마중한다. 저녁에도 따뜻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시인의 말뜻을 알 것 같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귀여운 강아지풀, 왠지 부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따라올 것만 같아 자꾸 돌아보게 된다.
 
이름 모를 들꽃들도 화사한 눈웃음으로 반겨준다. 매일 걷는 길이지만 볼 때마다 변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사를 쏟아 낸다. 해가 반짝 뜬 날, 구름이 낀 날, 바람이 부는 날, 어쩜 이리 공기의 맛도 다를까. 비가 오는 날은 흙냄새를 맡으며 우산을 쓰고 걷는 기분도 아주 운치가 있다.
 
봄꽃 사이로 단비가 내린다. 빗소리를 따라 남편이 좋아하는 막걸리랑 치킨을 사 들고 아파트 옆 공원 정자로 나갔다. 정자 주변엔 평소와 달리 다니는 사람이 없어 빗소리만 들린다. 남편과 함께 빗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지난 시절의 추억들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돌아오는 길에 꽃이 하도 예뻐 꺾어 와 꽃병에 꽂았다. 꽂아둔 꽃은 더 이상 피지 않고 색이 바래듯 시들어갔다. 그 자리에 그냥 둘 걸 그랬다. 그 예쁜 봄을 나 혼자만 누리려 했던 욕심이 얼굴을 붉어지게 한다.

내년 봄에도 올봄처럼 가슴 설레며 이곳에서 봄 마중할 수 있을까? 그 빈터를 지나칠 때면 향긋한 쑥 내음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토록 달콤하게 맞이했던 봄이 지나가는 사이에, 내 마음을 설레게 한 그곳엔 안타깝게도 아파트와 학교가 들어서고 있다. 쑥 향기로 찾아왔던 나의 추억의 장소가 그만 사라져버렸다.
 
아, 오랜만에 가슴 뛰는 설렘으로 맞이했던 봄. 그 쑥 향 가득한 추억의 봄 마중. 그 추억의 봄 마중은 이제 그리움의 몫이 되었다. 내년 봄은 어디로 봄 마중을 나갈까? /이진숙(jin6402@hanmail.net)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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