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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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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잘 알려진 작가이자 언론인 홍세화 선생이 지난 4월 18일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23년 2월 암 진단을 받은 후 1년 남짓 투병 생활을 해왔다.
스승을 통해 뒤늦게 '홍세화의 마지막 인터뷰(한겨레신문)'를 읽게 됐다. 인터뷰는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홍 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이 몸담았던 언론사와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사회의 변화를 기대하며 진보 정치와 한국 민주시민의 간극을 좀 더 적극적으로 줄여나가길 바랐다. 또 '오염된 자유'에 의해 시민이 고객화됐다고 씁쓸해했다. 고객에게는 인간이나 자유가 아닌 구매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 나는 민주시민인가 고객인가. 나와 생각이 달라도 사회를 위해 올바른 건가 아닌가를 생각하는 민주시민인지, 취향이나 의견만 쫒는 고객인지 반문해본다. 그가 강조하는 민주시민의 성격인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은 아니라도.
평생 아웃사이더, 주변인,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그는 “자유는 고결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결코 ‘내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견이나 취향, 욕망을 내세우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도, 돈이나 권력 등에 대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도 아니다. “회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짓는 자유는 무의미하다. 고쳐 짓거나 새로 짓을 게 없는,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그의 책 ‘결 : 거칢에 대하여’ 中)는 글이 되새겨진다.
홍세화(1947~2024)의 이름 앞에 붙는 호칭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전사, 빠리의 택시운전사, 작가, 언론인, 진보신당 대표, 장발장은행장, 자유인, 아웃사이더 등등이다. 호칭들에는 그의 신념과 이상이 묻어난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며 살다 간 그를 기억하며 그가 남긴 저서를 찾아 읽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