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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영미(pym1123@nate.com)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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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부터 시 낭송 강의를 하는 도서관 강좌가 이번 봄학기에도 개설되어 수강 신청이 시작되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라 각별하게 마음이 간다. 겨우내 부지런히 강의 자료를 준비했다.
시 낭송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가끔 자문하기도 하고,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에게 던져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시낭송 협회 활동을 시작한 지도 13년째다.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 낭송이 생소했던 그 시절, 도서관 강좌를 들으며 알게 된 강사님 덕분에 시 낭송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지역 문인협회에서 개최하는 콘서트에 초대해 주셨다. 그때 시 낭송하는 모습들을 처음 보았다. 그중 강사님의 낭송은 어수선하고 소란스럽던 야외 객석을 숨죽이도록 만들었다. 아! 그 목소리의 울림, 감동이었다.
그 후 강사님이 시 낭송을 함께 해보자고 손을 내밀어 주셨는데 못 한다고 사정없이 손사래를 쳤다. 시 낭송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먼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강사님은 뿌리치는 손을 꼭 잡고 시낭송가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 시의 향기를 전하는 시낭송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스승님을 만난 건 천운이었다.
흑백으로 고요히 떠오르던 추억이 어느새 눈앞에서 생생하게 요동친다.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난다. 스승님을 주축으로 낭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낭송협회를 창립했다.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 같지만, 그때까지도 낭송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협회의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무모하고 용감했다. 까마득한 허공에 놓인 사다리 끝을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구름 속에서 헤매기도 하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힘든 환경에서도 수시로 모였다. 연습실이 따로 없어 스승님댁에서, 회원이 다니는 교회 공부방에서, 날씨 좋은 날은 공원 정자에서, 도서관 동아리실에서 우리는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땅속에서 부지런히 봄을 준비하는 작은 씨앗들이었다.
1년 뒤 첫 낭송대회에 도전했다. 마침 구미에서 전국 단위의 낭송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때 스승님께서 추천해준 시가 이기철 시인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였다. 시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시를 외우는 데 급급했다. 무대 오르기 전의 긴장감은 무엇과 견줄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무대 공포증을 이겨 낼 수 있을까?’ 삭정이같이 메마른 낭송을 하고 내려왔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시 낭송에 관한 생각이 차츰 바뀌어 갔다. 협회 사무국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의무감으로 시작한 낭송, 멀찍이 두고 지켜만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날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낭송을 들으며 시집 밖을 나온 많은 시와 만났다.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이 삐거덕삐거덕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를 읊조리며 ‘이런 삶을 살고 싶다.’라고 소망해 보기도 했다. 마침내는 내가 남에게 시 낭송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기까지 이르렀다. 어쩌면 시 낭송과 만남이 내 숙명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창립 2주년을 기념해 첫 번째 시 낭송 콘서트를 개최했다. 그때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캄캄한 땅속에서 겨울을 이겨낸 씨앗들이 여린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그 후 매년 시 낭송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여러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있지만, 낭송에 대한 열정과 회원들의 화합된 마음으로 한 해도 쉬지 않고 치러 냈다. 올해 열한 번째 낭송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회원들은 한마음으로 아름다운 시의 꽃밭을 가꾸고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
작년 협회 송년회 자리에서 기념 시로 이기철 시인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를 낭송했다. 앞에 앉은 회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낭송하는데 여느 때보다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지금 어떤 사람들과 무엇을 하느냐는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다.’라며 인생길의 등불이 되어 주신 스승님, 늘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회원들 앞에서 낭송하며 깨달았다. ‘아! 이 시처럼 살고 싶다’ 그 옛날 품었던 소망처럼 따뜻하고 넉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 떨어졌어도 향기로운 꽃잎에 말로 / 내 아는 사람에게 /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삭정이 같은 가지에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겨우내 준비한 상춧잎 같은 시를 품고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행복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