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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가 장진홍 선생(출처:경상북도호국보훈재단)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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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전인 1930년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장진홍 선생(1895.6. 6-1930. 6. 5)은 사형집행일 하루 전날인 오늘 대구형무소에서 자결했다.
그는 1895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현재의 구미시 옥계동)에서 태어나 1916년 조선보병대 제대 후 광복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1918년 망명해 중국 봉천,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청장년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이후 러시아 적백내전이 격렬해지자 국내로 귀국했다.
귀국 후 자신의 전답을 팔아 600원을 마련해 3·1운동 과정에서 일제가 자행한 폭압 행위를 조사하고, 그 내용을 미군 하사관 김상철에게 전달해 영문으로 번역, 세계 각국으로 배부하도록 하는 등 독립운동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927년에는 폭탄 제조법을 익혀 제작한 폭탄을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배달시켜 현장에 있던 은행원과 경찰에게 중경상을 입혀 민족 독립 의지를 널리 알렸다. 이후 일본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1930년 7월 31일 사형집행일 하루 전날 대구형무소에서 자결했다.
"너희들 일본제국이 한국을 독립시켜 주지 않으면 너희들이 멸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내 츅체는 네 놈들의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제국주의의 타도를 위하여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고야 말겠다."
장진홍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으며, 1995년 6월에는 국가보훈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묘소는 경북 칠곡군 남율리에 있으며 묘소에서 가까운 구미시 진평동 소재 동락공원에 동상이 건립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