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문화신문 |
|
지난 14일 금오산 자락인 구미성리학역사관에서 조선시대 구미지역의 대표 고문헌과 현판 자료를 중심으로 역사적·문헌학적 가치를 조명하는 ‘조선시대 구미지역 고문헌의 재발견’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최현의 ‘금생이문록’과 노철의 ‘노철일기’, 오산서원의 건립 과정을 정리한 ‘오산지’ 고문헌을 중심으로 주제 발표와 종합 토론이 진행됐다. 또 구미지역 현판 자료의 현황도 소개됐다.
발표자가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먼저 최현이 지은 ‘금생이문록’은 그가 편찬한 ‘일선지’에 실려있다. 작품에서 최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일선 학맥의 계통을 허구, 즉 소설의 형식을 빌려 드러내고 있다. ‘금생이문록’은 꿈속에 들어가기 전인 도입부와 꿈속인 전개부, 꿈에서 깨어나는 결말부로 구성됐다. 소설의 등장인물을 보면 먼저 도입부에서 야은 길재, 점필재 김종직, 신당 정붕, 송당 박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어서 포은 정몽주가 등장하고 농암 김주, 단계 하위지, 경은 이맹전, 강호 김숙자와 두 처사 용암 박운, 진락당 김취성과 한자리에 모여 정몽주가 좌장이 되어 이들이 함께 시를 지으며 대화를 나눈다. 최현은 꿈속에서 만난 인물들을 통해 일선(선산) 지역 학맥의 도통(道通) 형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노철일기’는 노철이 19세부터(1739년 영조15) 52세까지(1772년 영조48) 34년 동안 쓴 일기다. 노철은 68년간 일기를 쓴 무관으로 유명한 노상주(1746~1829)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노철일기’는 무반인 아버지의 관료 생활을 아들의 시선으로 적은 아버지에 대한 일기다. 당시의 각종 행정 업무뿐 아니라 변방의 사정, 향리들의 행태, 환곡의 운영, 각종 송사 등에 관한 일종의 정무일지 성격을 띠고 있다. 여기에 주변인과 관기(官妓)와의 만남, 유람 등 개인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매일 일어난 일과 보고를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오산지’는 16세기 중엽 인동현감으로 부임한 류운룡이 오산서원을 건립하고, 건립과 관련된 사항들을 기록한 서원지이다. ‘오산지’는 서원의 제향의식과 강학활동 등 서원의 실질적인 운영에 초점을 맞춰 편찬됐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편찬된 서원지로, 초창기 서원의 설립 목적과 존현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류운몽은 부임하면서 길재를 추숭하는 작업에 착수, 길재의 묘소를 정비하고 지주중류비를 건립하는 등 길재를 현창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또 구미지역에 유교 관련 문화유산으로 인정되는 고건축물의 현황도 파악됐다. 발표자는 문화유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고건축물이 145곳이고 여기에 게시된 현판 자료 849개라고 밝혔다. 수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규모라면 구미를 유향(儒鄕)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종합토론에서 고건축물을 체험 및 교육, 창작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제안과 비지정 문화재 관리에 대한 고민, 최현 문학관 건립, 문화재 복원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하지만 발표자가 지역에 대한 이해 없이 사료로만 접근하다 보니 다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현판 자료의 현황을 정리하면서 시읍면으로 구분해 구미시와 읍면이 분리된 것처럼 보여진다. 행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읍면동으로 구분함이 어떨까 싶다. 또 ‘금생이문록’에 나오는 월파정의 위치에 대해서도 분분하지만 구미시가 월파정 복원 사업을 위해 해평 낙산리 고분군 마을 중간쯤으로 파악한 내용을 더해 토론이 이뤄졌다면 좀 더 활발한 논의가 되지 않았을까. 지역과 연계가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 연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술대회가 학문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행정 등 지역과 좀 더 긴밀하게 교류돼야 할 것이다. 지역 연구자가 그 중간자의 역할이 되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지역의 역사와 문화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