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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휴대폰은 일종의 만능열쇠이다. 그것은 세계와 나를 연결해 주는 통로이자, 부담스럽고 버거운 상황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방패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부작용도 이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는 그의 저서 『불안 세대』에서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와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가 1996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가 느끼는 불안의 이유’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른바 ‘SNS용 인격’이라 하여 온라인에서 실수 없이 자신의 좋은 모습만을 보여야 한다는 긴장된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핵심에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SNS)가 있다는 것이다.
하이트 교수는 소셜미디어는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에게 더 해롭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는 남자아이들이 유투브나 게임에 치중하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인스타그램 등 시각 이미지 중심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방문하는 성향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예컨대 인스타그램의 사진 보정 앱이 소녀들의 마음속에 ‘불안 경보’를 울리는 주요 원인이라고 하이트 교수는 주장한다. 보정된 사진 계시는 미의 기준을 높이고, 그 결과 소녀들이 외모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일이 빈번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선영의 청소년 소설 『열흘간의 낯선 바람』의 주인공 ‘송이든’은 바로 이런 상황에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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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영의 『열흘간의 낯선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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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사막과 초원에서 참나를 만나는 경외심 체험이 작품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며 인스타그램의 ‘초록여신’으로 통하는 고1 ‘송이든’은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얼굴을 보정하여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녀는 SNS에서 가상의 스타로서 ‘여신’의 미모로 살아간다. 그녀의 노력이 첫사랑 진경우의 오프라인 만남 요청으로 드디어 빛을 발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SNS에서 얻은 행복감은 가상 세계에서 현실로 옮겨지는 순간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자신의 용모에 대하여 대놓고 무시하는 진경우의 태도에 직면하자 가상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이든은 성형수술을 결심한다.
그러나 엄마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느닷없이 몽골 여행을 제안한다. 여행 당일에서야 이든은 혼자 떠나는 여행임을 알게 된다. 게다가 온통 모르는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열흘간 낯선 곳을 여행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몽골 초원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휴대폰을 쓸 수가 없다. 낯선 곳, 낯선 사람 속에서 이든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SNS에 길들여진 인물들이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낯선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부담스럽고 버거운 일이었다. 결국 이들은 온라인 프로그램을 오프라인으로 가져와 실행하는 것으로 어색한 시간과 공간을 채워나가기로 한다. 이름하여 ‘열흘간의 낯선 사람 프로젝트’로서,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내보이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 것이다. 몽골의 사막에서, 초원에서, 별똥별로 끊어지고 이어지는 멤버들(주인공 이든과 함께 여행하게 된 핑크할머니, 허단, 우석 오빠)의 이야기 속에서 모두는 서서히 깨닫게 된다. 우리는 SNS 속 프레임 세상 밖에서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음을. ‘별과 별이 어깨를 겯고 서로를 비춰주듯’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몽골의 사막, 초원, 별똥별 등 끊어지고 이어지는 대자연 속에서 이든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체험을 통하여 참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우주 속에서 한없이 작은 나를 발견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경외심’을 느끼는 순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외심이란 바로 몽골의 대자연과 같이 ‘세상에 대한 기존 이해를 뛰어넘는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SNS 속 세상을 현실보다 더 생동감 있는 세계라고 믿는 십대가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즉 존재 자체로서의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주고 있다. 주인공 이든이 SNS 세계에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꾸며진 자아로 살아온 소녀였기에, 있는 그대로의 내가 소중하고 외모 등은 별게 아니라는 체험은 더욱 의미 있는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이 작품은 SNS 프레임 속 세상의 ‘꾸며진 나’의 세계에 갇혀서 현실과의 괴리를 고민하던 소녀가 몽골의 대자연 속에서 참나와 마주하는 경외심으로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즉, 주인공 이든과 같이 SNS의 폐해 속에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을 구제할 하나의 해결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왜냐하면, ‘자신 외 대상에 대해 감탄할 줄 아는 능력’으로서 경외심을 느끼는 것은 ‘우리 삶의 일부인 상실과 트라우마를 딛고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외심의 원천은 대자연, 심적인 아름다움, 위대한 건축물과 같은 시각 디자인, 음악, 집단 열광, 영성과 종교, 삶과 죽음, 삶의 근본 진리를 깨닫는 통찰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러한 압도적이거나 놀라운 감정을 느끼고 나면 불안과 부담 등 스트레스가 사소하게 느껴지면서 그게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큰 비중(20~30%)을 차지하는 자연에 대한 놀라움, 경외심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힘을 발휘해 준다. 그러기에 환경운동가 레이첼 커슨은 ‘부모라는 이름의 외로운 별들이여! 그대가 보는 것의 모든 것의 의미, 신비, 아름다움에 다만 ‘아이와 함께’ 놀라워하라.’고 권유하였으리라. 또한 오프라 원프리는 “내게 자연이란 큰 소리로 감탄하게 되는 순간의 연속이다. 자연의 장대함은 가끔 자연의 가장 소소한 선물을 통해 내 영혼의 눈을 밝힌다고.”고 했다.
<참고 서적>
조너선 하이트, 『불안 세대』(웅진하우스, 2024.8)
대커 켈트커, 『경외심』(위즈덤하우스, 2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