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비를 견딘 돌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안엔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숨 쉬고 있다. 돌은 영원을 꿈꾸며 시간을 새긴다. 그리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본지에서 ‘길 위의 역사, 돌에 새긴 시간’을 기획, 돌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며 잊힌 이야기들을 되살려 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9월의 마지막 주말, 지도에 잘못 표기되어 온 '숭신산성'(崇信山城)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국토정보지리원의 현장 조사가 아침 9시부터 진행된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냉산으로 향했다.
구미시 해평면 냉산 자락에 들어서자, 신라 최초 가람인 도리사의 첫 관문, 일주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계절은 분명 가을이건만 길 양옆으로 터널처럼 이어진 가로수는 여전히 짙은 푸르름을 머금고 있다. 가로수 길의 정취에 흠뻑 취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첫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구미산악레포츠공원으로, 오른쪽은 도리사로 향하는 길.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굽이진 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자, 마침내 차량으로 접근 가능한 임도의 끝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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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산 정상부쯤에서 냉산성의 성곽 흔적을 확인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그동안 텍스트로만 보아왔던 금수굴을 만났다. 금수굴은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아도화상이 열반에 드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금수굴은 냉산정 진입로에서 약 400m 떨어진 냉산 서쪽 돌벼랑에 자리 잡고 있다. 진입로와의 거리는 가깝지만 이곳으로 향하는 길은 만만치 않다. 경사가 워낙 급해 발을 디딘 계단에서도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할 정도다. 표지판에 쓰인 문구처럼 그야말로 '고행(苦行)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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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苦行)의 길 끝에 마침내 금수굴(金水窟)을 마주했다. 주변을 압도하는 거대한 바위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질 만큼 거칠고 층층이 갈라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사각형 블록들을 켜켜이 쌓아 올린 것처럼. 표면은 밝은 황갈색 또는 옅은 회색을 띠었지만, 그늘지고 습한 부분은 청록빛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바위 아래에는 어둡고 작은 동굴 입구가 있었다. 오른편 안쪽으로 깊숙이 파인 그곳은, 오랜 이야기를 품은 듯 신비로웠다. 고개를 들어 다시 바위를 올려다보니 바위에 새겨진 선명한 글씨, 金水窟이 눈에 들어왔다. 굴속의 물빛이 황금빛을 띤다 하여 붙은 이름, 그리고 이곳에서 아도화상이 머물렀다는 전설이 문득 스쳤다. 이렇게 낮고 조그마한 곳에 과연 사람이 머물 수 있었을까. 의문을 품은 채 축축한 흙냄새가 스며드는 깊은 동굴 속을 들여다보았다. 문득, 돌에 새겨진 시간 속에서는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숙연한 생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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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굴에 얽힌 이야기는 조선 중기의 학자 여헌 장현광 선생이 지은 「금수굴 고풍삼편」에 비교적 자세히 드러나 있다. 선생은 1599년 현재의 해평면 낙산리 냉산 아래 월파촌에 머물며 금수굴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냉산 금수굴, 그 이름 옛부터 전해 오네"라며 이 지역 전설을 시로 남겼다.
“일선(一善)의 냉산에 금수굴이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지는 오래였지만 장현광 선생은 그 산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직접 찾아가보지는 않았던 듯하다. 오늘의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이 살아 있는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볼 수 있는데 말이다.
장현광 선생의 「금수굴 고풍삼편」을 아래에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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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굴 고풍삼편」
1
냉산의 금수굴/ 그 이름 옛부터 전해 오네/ 굴속의 샘은/ 물빛이 황금색이라 말한다오/ 그 이름 유포되어 들은 자 많으나/ 길에는 한 명도 본 사람 없다네/ 사람들이 말하길, “선정(禪定)에 들어가/ 굴속에서 생불(生佛)되어/ 종적을 감추고 곡식을 먹지 않으며/ 천년을 하루처럼 사는데/ 바위 문 굳게 닫고 열지 않아/ 진세 사람들 자취를 찾지 못한다.”/ 내 지금 산 아래 마을에 와서/ 밤낮으로 바라보니/ 푸른 벼랑 백 자나 높은데/ 흰 구름 일었다 없어졌다 하는구나.
2
우주(宇宙)를 굽어보고 우러러보니/ 한 가지 이치가 진실하구나/ 금수굴 찾기 어려우니/ 이 이치 알기 어렵지 않다오/ 형기(形氣)의 유무(有無)는 판별되고/ 인물(人物)의 생사(生死) 구별된다네/ 있는 것은 없을 수 없으니/ 살아서 귀신이 되는 자 그 누구인가/ 한 사람이 허황한 소문 퍼뜨려/ 백 년 동안 함께 미혹되었다/ 가령 굴과 선정이 있다 한들/ 내가 따라서 머물 곳은 아니라네/ 도깨비는 인간의 짝이 아니니/ 깊은 굴속 어찌 나의 집이겠는가/ 더구나 이러한 이치 없으니/ 붉은 벼랑 밝은 대낮에 비추네.
3
나의 몇 칸 초가집/ 산을 등지고 시내 구비에 있네/ 창을 열면 광경이 들어오고/ 문을 나가면 강역(疆域)과 통한다네/ 초가에는 무엇이 있는가/ 성현(聖賢)의 책 천 권/ 날마다 무엇에 종사하는가/ 윤리(倫理)와 강상(綱常)을 연구한다네/ 집이 비었으니 여름에 앉기 좋고/ 방이 따뜻하니 겨울에는 자기 좋네/ 아침저녁으로 콩과 곡식 실컷 먹고/ 술이 있으면 어육을 안주 삼네/ 처자식과 기쁘게 웃고/ 벗들과 강설(講說)을 한다네/ 사람들이 와서 굴을 물으면/ 나는 내 집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