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니까,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이 말은 어느 방송사가 마련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수 허찬미의 어머니, 김금희 씨가 남긴 한 마디였다. 청취자들의 관심을 모아 딸의 합격에 도움을 주고자 함께 출연한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본선 1차전에서는 딸이 1등 곧, ‘진(眞)’을 차지하여 모녀가 눈물의 포옹을 하는 장면이 연말연시의 추위를 훈훈하게 녹인,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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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환경연수원의 감태나무 단풍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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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한(大寒)은 그 이름 그대로 한파(寒波)의 꼬리를 길게 드리운 가운데, 지난 토요일 기자는 또 다른 모성애의 현장을 찾아 길을 나섰다. 기온이 다소 오르기 시작한 10시 반경에 금오저수지 안쪽에 위치한 경상북도환경연수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온몸을 감싼 엄마와 유아들이 환경체험놀이를 하러 이곳 탄소제로교육관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그 건물 앞의 체험 숲으로 가니 오늘 화제의 주인공인 감태나무 네 그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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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태나무 겨울눈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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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잎으로 교체되는 감태나무(4월 중순)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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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왜 가을부터 초봄까지도 마른 잎을 떨구지 않을까 무척 궁금했다. 이 나무가 묵은 단풍잎을 매달고 묵묵히 겨울을 견디는 것은 자식인 겨울눈을 감싸서 보호하기 위한 것, 곧 모성애(母性愛)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감태나무의 마른 잎은 4월 중순에 이르러 새 잎이 나오고서야 조용히 땅에 내려 앉는다. 이 사실에 감탄하여 숲해설가 자격연수 중 해설 시연 시험 때도 이 나무를 중심 주제로 삼았었다.
그러다 최근 기자는 감태나무의 ‘모성애’를 다시 한번 발견하는 감동 체험을 하게 되었다. 대구에서 활동 중인 이태수 시인의 ‘한겨울 점묘’라는 시에서였다. “포대기에 아기를 감싸 안은 중년 여인이 / 감태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 한겨울 풍경 중의 백미 같다 / 보채는 아기를 다독이는 어머니 마음, 안간힘으로 묵은 잎사귀들을 그대로 붙들고 / 새잎 돋는 봄을 기다리는 감태나무의 말하지 않는 말들이 들린다 //[시집 『유리창 이쪽』 (2020. 7) 중에서]
이 시에는 직접 ‘모성애’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포대기에 아기를 감싸 안은 중년 여인’, 곧 어머니와 ‘안간힘으로 묵은 잎사귀들을 그대로 붙들고 새잎 돋는 봄을 기다리는 감태나무'의 절묘한 병치! 감태나무의 모성애를 이 이상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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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태나무 갈색 단풍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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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여운을 안고 기자의 발걸음은 환경연수원 안쪽 산길로 향했다. ‘색동원’을 지나면서 길가의 산기슭에 감태나무 단풍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옅은 갈색에서 핑크빛이 감도는 갈색까지 잎들의 모습이 다양하다. 모두가 잎을 비워낼 때 이 감태나무 마른 잎은 무채색 겨울 숲에서, 잘 구워낸 토스트처럼 왼쪽 금오산 등성을 넘어온 햇빛을 받아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산책로를 조금 걷다가 칼다봉과 선기동으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를 만나면 왼쪽 ’칼다봉‘ 방향으로 이어 간다. 지금은 조금씩 얼음으로 남아있지만, 여름이면 청아한 물소리가 함께해주는 계곡을 따라 걷는 완만한 숲길이다. 게다가 환경연수원 탐방을 겸하는 장점을 지녔기에 기자는 이 길을 금오산 제일의 산책 코스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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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태나뭇잎 차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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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목들 사이로 꾸준히 드러나는 감태나무 단풍잎들이 찬 바람에 서로 몸을 부딪친다. 마치 빛바랜 고서(古書)의 책장을 넘기는 듯한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호젓하게 걷다 보면 오리나무 거목을 지나 하늘색 벤치가 놓인 등성이에 이른다. 여기서 보온병에 담아온 도라지생강차를 마시다 보니, 갈색 잎 색깔이 그대로 우러나는 감태나무 차 생각이 났다. 둥굴레차와 비슷한 부드러운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감태나무 차는 관절염이나 근육통 완화와 혈액 순환 개선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약효가 있는 데다 재질이 단단한 이 나무 줄기로 만든 지팡이는 수명을 연장시켜준다고 하여 ’연수목(延壽木) 지팡이‘라 불린다.
벤치 앞에는 2023년도 초에 세운, 소나무 재선충 예방 나무 주사 사업을 알리는 간판이 아직 서 있어, 희뿌옇게 말라가는 소나무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더하며 산을 내린다. 금오산 상가로 내려와 우선 뜨뜻한 추어탕 한 그릇으로 몸을 데웠다. 전통 찻집에서 진하고 걸쭉한 수제 대추차를 마시며 여정을 되새겨 보았다. 오늘의 감태나무 단풍 산책은 추운 겨울이기에 더욱 따스한 모성(母性) 앞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엄마!’, 그리고 자라서도 언제나 가슴을 울리는 말은 ‘어머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고귀한 사랑과 희생의 어머니, 당신께 바치는 감사의 헌정으로, ‘어머니의 은혜’ 노래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찻집을 나왔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