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등산로 입구 안내 지도 |
| ⓒ 경북문화신문 |
|
우수(雨水) 절기를 맞아 한결 온화한 아침나절이다. 이번 산책은 구미시 봉곡동, 영남네오빌 왼쪽 뒤편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서 시작한다.
‘철쭉동산’ 위로 마을 쉼터가 있다. 숲에는 참나무류의 활엽수와 상록수인 소나무가 빽빽하게 함께 서 있다. 참나무류들은 잎이 달렸던 자리에 떨켜를 형성하여 찬 기운이 드나드는 구멍을 막는다. 푸른 잎을 그대로 지니기로 선택한 소나무의 잎들은 어떻게 추운 겨울을 견딜까? 지방질이 풍부한 이들은 공기구멍 주변에 두꺼운 세포벽과 왁스층을 만들어 추위 속에서도 열과 물관리를 효과적으로 해낸다고 한다.
|
 |
|
| ⓒ 경북문화신문 |
|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속으로 들어선 지 25뿐쯤 지나니 안내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좌우로 길이 나누어져 있다. 기자는 왼쪽 길로 접어들어 조금 더 올라 등성이의 안부(鞍部) 지점에 이르렀다. 바로 다봉산(多峰山)과 북봉산(北峰山)으로 향하는 뚜렷한 갈림길이다. 이 순간,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한 구절이 머릿속을 스친다.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 …나는 사람들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후략)
다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더 좁고 사람들이 좀 덜 다니는 듯하고, 북봉산 방향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한 듯 길이 넓고, 잘 다져져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마주했던 수많은 선택처럼, 이 단순한 갈림길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나는 오늘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 것인가?’
기자는 '덜 밟은 길'처럼 느껴진 다봉산 방향을 선택했다. 솔향을 맡으며 계단을 올라 우선 철봉이 있는 작은 봉우리에 도착한다. 그곳 벤치에 잠깐 앉아 몸의 활력을 얻고, 비교적 경사가 있어 조금은 숨을 헐떡이며 다시 산을 올라 정상에 이르렀다.
|
 |
|
| ⓒ 경북문화신문 |
|
좁다란 정상에는 전망은 없지만, 솔숲에 작은 정상석이 ‘다봉산’이란 이름을 밝혀 주었다. 옆으로 평균대와 벤치가 놓여 있어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확실히 여기는, 헬기장과 정자가 있는 북봉산에 비하면 사람들에게 그다지 각광 받지 못하는 곳이란 느낌이 든다.
‘북봉산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의 관심은 선택하지 못해 후회되는 삶을 실제 살아보는 기회가 주어지는 내용의 판타지 소설로 흘러갔다.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는 책이다. 주인공 노라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남자 친구 댄과의 결혼 생활, 수영 선수의 삶, 빙하학자의 삶, 음악가의 삶을 살아보지만,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머무르고 싶도록 행복한 삶도 경험하지만, 그것은 끝내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 남의 영역을 차지한 듯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가꾸는 과정이 없이 이미 갖춰진 행복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후회를 되돌려 보아도 하나 같이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그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노라는 깨우치게 된다. 후회는 잘못된 선택의 증거가 아니라, 현재를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노라는 마침내 원래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후회 없이 완벽한 삶은 없으며, 다른 길이 아니라 결국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삶의 길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기자는 ‘덜 밟은 길’의 선택이란 생각에 문득 최재천 교수의 ‘세계 1인자 쉽게 되는 법’이라는 글을 떠올렸다. 『최재천의 희망 수업』에 들어 있는 한 꼭지이다. 그는 하버드대학 대학원 시절 개미 연구의 세계 1인자인, 그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셨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스승을 따라 개미를 연구하였지만, 그는 용기 있게 다른 곤충인 ‘민벌레’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 이 곤충을 연구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연구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세계 1인자가 되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 경험을 살려 이렇게 회고한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하면 그 분야의 1인자가 되는 겁니다. ” 라고.
산행 후 얼큰한 국물 맛이 일품인 전통육개장집을 찾았다. 마지막 코스로 주차 공간이 넓은 카페를 찾아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기자는 스스로에게 격려의 마음을 전했다. 대학원 시절, 당시에는 생소했던 분야인 ‘청소년문학’을 전공하고자 용기 내기를 잘했다고 말이다.
가까운 도심의 야산에서 마주친 작은 갈림길 하나가, 우리 삶의 철학적인 주제인 '선택에 따르는 후회, 혹은 용기'에 대해 책과 함께 사색할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이것이 오늘 한나절 산책의 의의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