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물길 따라 문화생태 탐방로 제3코스인 ‘매학정 버드나무길’은 2021년에 제정한 구미의 걷기 좋은 길 9선 중 ‘1선’의 위상을 지닌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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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학정 홍매화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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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기자는 아침나절에 매학정 근처에 차를 세우고 우선 매학정(梅鶴亭)을 찾았다. 이맘때 이곳을 찾는 구미 시민이라면 가장 궁금한 것이 ‘홍매화가 얼마나 피었을까?’하는 것인데, 아쉽지만 놀랍게도 벌써 진분홍 꽃망울을 터뜨린 나무들도 있었다.
시도기념물 제16호인 매학정(梅鶴亭)은 조선 중종 때 초서를 잘 써서 ‘초성’이라 불리는 고산 황기로의 유적이다. 이 정자는 황기로 선생이 뒤의 고산(孤山)과 앞의 낙동강을 배경으로 매화를 벗 삼고 학을 기르며 글씨와 시를 즐겼다는 데서, 권력과 번잡함을 떠나 맑은 삶을 지향했던 선비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곳은 매학정과 강정마을을 배경으로 ‘보천탄’, ‘매학진’ 등으로 불리던 강정나루였다. 지금은 730미터의 ‘숭선교’가 고아읍과 해평면을 연결해 주고 있다.
매화나무는 매실나무라고도 하는데, 드물게도 꽃과 열매가 모두 사랑받는 나무이다. 꽃은 사군자의 하나로 조선의 화가들이 화폭에 가장 많이 담았던 나무이다. 엄동설한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고고한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차와 청으로 음용하는 매실은 소화를 돕고 피로를 풀어주는 효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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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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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학정 버드나무길’의 출발 지점은 매학정 아래에서 이어지는 데크길이다. 이어 강정배수장-고아파크골프장—감천(甘川) 제방까지 버드나무 군락지를 원없이 바라보며 다시 매학정으로 원점 회귀하는 여정인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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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습지 버드나무 군락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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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호수처럼 펼쳐진 강물을 보며 왼쪽으로 고산자락을 돌아서면 대번에 광활한 버드나무숲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이 버드나무는 껍질에 사람의 몸에서 살리실산으로 바뀌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어서 일찍이 아스피린의 원료로서 열을 내려주고 염증과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진통제의 역할을 해왔다.
자동차 도로로 나와서, 골프장을 사이에 두고 끝없이 길고 넓게 펼쳐진 버드나무숲을 바라보며 걷는다. 기자는 저절로 ‘와!’하는 경이로움에 압도되어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단일 수종(樹種)으로 이렇게 넓게 펼져진 숲에 여러 갈래의 작은 길이 나 있는 광경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초여름까지 버드나무 신록과 금계국으로 더욱 장관일 것이지만, 지금은 다만 버드나무들의 윗부분이 고동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며 봄 흐름을 타고 있었다. 아직은 무채색의 대지에 봄을 알리는 꽃 한 가지가 도롯가에서 길손을 반겨주었다. 말냉이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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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을 알리는 말냉이꽃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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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 들 너머로 멀리 마치 우산처럼 보이는 접성산의 대황정을 가끔 바라보며 걷다 보니 철새 도래지엔 감천 제방에 이르렀다. 이 냇물은 김천에서 흘러와 이곳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가까이에 금오서원이, 멀리 구미보가 바라보이는 이곳이 버드나무길의 반환점이다. 멸종 위기종인 흑두루미, 재두루미가 찾아오는 곳이라고 팻말이 안내해 주고 있다. 3월 초순까지 여기 머물던 철새들이 모두 떠나고, 지금은 다만 백로 한 머리만이 물가에 조용히 내려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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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천-매학정 버드나무길 반환점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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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 숲과 낙동강 너머로 멀리 냉산을 바라보며 매학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자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버들 낭자’ 전설을 떠올렸다. 왕건이 영산강가에 정박해 있을 때였다. 금성산 자락에 오색 구름이 일어 신기하게 여겨 찾아가 보았다. 나주 완사천 우물가에서 한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왕건이 물 한 바가지를 청하자 바가지에 버들잎을 드리워서 주면서, “급하게 마시다 체할까 염려되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용모가 아리따운데다가 지혜롭기까지 한 이 처녀에게 감동한 왕건이 훗날 왕비로 삼았으니 바로 장화왕후였다. 그 아들이 2대 혜종이다.
도리사가 있는 인근의 냉산에는 또한 후백제의 견훤과 어렵게 전투를 벌인 고려 태조 왕건 일화가 전해진다. 이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팔공산오딧세이 ‘골든마스크’가 지난해 11월 중순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되었다. 왕건과 신숭겸의 신의(信義)를 담은 대사 “제가 왕이 되어 죽겠습니다. 왕은 제가 되어 사십시오.”라는 대사는 관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오늘 기자의 ‘매학정 버드나무길’ 걷기는 놀라움과 감동의 풍광(風光) 속에서 선인들의 청류(淸流)와 신의(信義)라는 그윽한 인품의 향기와도 함께하는 한나절 산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