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동하는 4월이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기자는 금오저수지 아래 대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금오산 주 등산로 초입인 ‘할딱고개’까지의 봄꽃을 찾아 나섰다.
금오저수지 올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결에 남은 벚꽃잎이 물 위로 스며들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봄바람 휘날리며 / 흩날리는 벚꽃잎이 /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우우 둘이 걸어요.” 장범준의 ‘벚꽃 엔딩’ 가락이 궛전에 흐르는 듯하다. 이제 이 꽃은 너무 짧은 생이 아쉽기에 꼭지를 앞세워 붉게 한 번 더 피우는가 싶더니, 이내 푸른 잎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채미정(採薇亭)’ 뜰에는 모란 꽃망울이 피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메타세콰이어 숲에 들어선다. 도로 주변에는 빨간 겹벚꽃이 피어나고, 겨울 동안 줄곧 누워 지내던 이곳 명물 맥문동들도 일어나려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계곡에 드리운 노란 개나리도 푸른 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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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블카 아래의 산복숭아꽃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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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데크 길을 따라 ‘돌탑 21세기’ 부근에 이르자 연녹색 잎과 흰 꽃이 조화를 이룬 산벚꽃들이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마을의 벚꽃이 황혼을 맞이한 반면, 이곳 산벚꽃은 밝아오는 아침을 맞고 있다. 그런가 하면 푸른 잎을 배경으로 더욱 붉게 존재를 드러내는 산복숭아꽃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고 있다. 진달래가 지고, 가끔 철쭉이 한층 성숙한 우아미(優雅美)를 선보인다. 기는 줄기인 연분홍 줄딸기꽃은 길가로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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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호색과 개별꽃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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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山城)과 이어지는 ‘대혜문(大惠門)’이 가까워지면서 길옆에는 푸른 밤하늘의 아스라한 별처럼 초롱초롱 흰빛을 드러내는 풀꽃들이 보인다. ‘은하수’라는 꽃말을 가진 개별꽃이다. 그러더니 시원한 암반수를 선사해주는 ‘영흥정’에 이르자 옅은 하늘색의 현호색들이 개별꽃과 어우러져 길가 야생화원을 풍성하게 해준다. 이 두 꽃들은 삼삼오오로 폭포 주변까지 둘러앉아 있어 가히 군락지라 해도 좋을 듯하다.
이어지는 길은 점차 숲의 깊이를 더하며 ‘대혜폭포’로 향한다. 최근 내린 봄비에 물소리가 힘차게 귀를 울린다. 문득 이케다 다이사쿠 세계계관시인의 ‘폭포’라는 시(詩)가 떠오른다.
폭포처럼 세차게 / 폭포처럼 한결같이 / 폭포처럼 두려움 없이 / 폭포처럼 쾌활하게/ 폭포처럼 당당하게 / 사나이는 왕자(王者)의 인품을 지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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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혜폭포 앞 나무에 핀 산괴불주머니꽃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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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는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키며, 씩씩하게 살아갈 삶의 의욕을 북돋운다. 그 주변에는 산괴불주머니들이 새로 등장하여 물소리를 들으며 쑥쑥 자라고 있었다. 그중 한 송이의 산괴불주머니꽃이 나무 위에 껑충 뛰어올라 폭포의 물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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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딱고개' 표지판 위의 매화말발도리꽃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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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정의 마지막 구간은 이름부터 숨이 차오르는 ‘할딱고개’다. 가파른 나무 데크 계단이지만, 양 옆을 살피며 천천히 오르니 핀곤함이 덜하다. 바위 아래 하얗게 핀 꽃들을 더러 보았지만, 여기에서는 더 자주 눈길을 끈다. ‘매화말발도리’꽃이다. 그러더니 ‘할딱고개’ 표지판 위에서도 이 꽃이 태연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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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딱고개' 전망대 벼랑의 꽃사과나무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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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위의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자 금오저수지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곳 절벽 위에서 자라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길손들을 놀라게 한다. 여기에다 누가 심었을까, 이 꽃사과나무를. 그 연유를 알 수 없지만, 어떤 선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기자는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크지 않은 나무지만, 붉은 꽃봉오리를 단단히 맺고 서 있는 모습은 유난히 또렷하다. 화려하게 만개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듯하다. ‘사랑의 시작’이란 꽃말을 가진 이 나무의 꽃망울을 보면 금방이라도 진분홍 꽃을 터뜨릴 기세다. 그런데도 나중에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얀색으로 피어난다. 그래서 특히 바위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꽃사과나무 꽃봉오리는 길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사랑은 화려한 설렘에서 시작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어가는 것은 어떤 시련이 와도 담담하고 수수하게 견디는 힘이라는 것을.
금오저수지에서 시작해 ‘할딱고개’에 이르는 봄날의 산책은, 의외로 많은 봄꽃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음미하는 걷기의 즐거움을 온전히 경험하게 하는 기회다. 이곳에 야생화와 꽃나무가 이렇게 풍성할 줄이야! 등잔 밑이 어둡다는 느낌이 살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