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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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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김정대 회계과장에 이어 2월의 마지막 날에는 박희규 구미시립 도서관장이 정든 구미시청을 떠났다.
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다.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지만,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법이다.

1976년 공직의 길에 들어선 박희규 구미시립도서관장은 1984년 9월 구미로 전입을 했다. 공직 생활 36년이요, 구미시와의 인연 28년이다. 인생살이가 짧고도 길다고 하지만, 36년은 평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제 정든 공직의 뜨락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시와 수필을 공부하는 자연인인 습작생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人生何處不相逢( 인생하처불상봉)이다. 사람이 살면서 어찌 다시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박관장은 이러한 삶의 방식을 가슴 깊이 새겨놓고 있었다.
2월 28일 퇴임식 직전, 박 관장을 잠시 만났다. 백발이 들어서기 시작한 얼굴에는 흘러간 36년 세월이 아련히 맺혀 있었다. 관장은 그 순간에 이러한 말을 남겼다.

"퇴임식은 아쉬움도, 공허함도 아닌 기쁨이다. 하지만 막상 퇴임을 할려고 하니 5년 전 오지개발 사업으로 이집트 견학 때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어머님에게 죄송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슴에 남은 모정은 눈물을 샘솟게 하는 근원인가 보다.
박관장은 하얀 머리와 훤칠한 키에 잘 어울리는 두루마기로 봄기운을 불러들이며 퇴임식장으로 향했다.

가슴에 맺히도록 그리운 모정이 자리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퇴임식장, 하지만 든든한 후원인인 86세의 부정이 박관장을 따스하게 맞이하면서 '가슴에 울컥 남은 모정의 그리움'을 쓸어내리는 듯 했다.
아버지의 소원이 면장한번 하는 것이라고 했고, 아버지는 면장은 곧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박관장은 면장 한번 해보는 것이 꿈이 되고 말았다. 그는 감사할 줄 아는 인덕의 소유자였다. 면장을 넘어 동장, 과장, 관장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박관장은 퇴임식장 앞줄에 앉아 있는 남유진 시장을 향해 '시장님 고맙습니다'라는 감사를 진솔한 심정에 담아 보냈다.

남유진 시장과 박동진 새마을회 회장, 김철호 형곡새마을 금고 이사장, 손홍섭,박교상 의원, 가족과 친지, 동료와 수많은 공무원이 함께 한 자리에서 선 박 관장은 "스물네살 떠꺼머리 총각으로 공직에 입문하여 열정과 젊음 하나로 겁 없이 부딪혀온 세월은 엊그제 같은데, 어느 덧 60을 바라보는 초로의 몸이 된 것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은 시간의 흐름도 뒤 돌아보지도 않은 채 저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며 퇴임사를 읽어내렸다.

박관장은 주어진 일에 열정을 바쳐 일하는 진정한 일꾼이었다. 70년대, 지방행정의 화두인 새마을 운동과 영농지도 산림 녹화 등 숱한 애환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 왔고, 본청과 여러부서에서 날밤을 세우면서 고민하고 고뇌한 일들은 박 관장이 가장 그리운 추억의 한토막으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특히 진평동 수해사건, 무을 생태공원에서의 아찔한 사고와 신종플루라는 악재 속에서도 완벽하게 이뤄낸 대한민국 새마을 박람회, 남유진 시장과 함께 새마을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기획재정부, KDI 대경연구원을 방문하던 급박했던 일들은 영원히 간직하고 픈 소중한 공직의 자산이라고도 했다.

"모는 일에는 열광하고,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신념대로 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만, 세상에 풀리지 않은 매듭은 없더군요. 얽히고 설킨 매듭 앞에서 조용히 앉아 그 매듭을 하나하나 풀다보면 신기하게도 언젠가는 풀려있었고, 먼 훗날 혼자 앉아서 스스로 만족하며 미소지을 때도 있었습니다."

퇴임사 구절구절에 경험담을 살리면서 동료와 후배들의 가슴을 깊이 파고든 박 관장은 마지막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구미시는 남유진 시장님의 높으신 행정경륜과 끝없는 열정, 1천600여명 공무원이 힘을 합친다면, 꿈과 미래가 있는 행복한 도시, 저와 우리 아이들이 함께 살아갈 멋과 낭만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구미로 거듭날 것입니다."

박 관장이 36년이라는 공직을 무사히 끝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발길을 옮겨 놓을 수 있게한 중심에는 아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래서인지, 이날 박관장은 팔불출의 이야기를 조금하겠다면서 아내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스물네살 꽃다운 나이에 7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여섯 동생들의 뒷바라지와 박봉에도 불구하고, 불평, 불만 한마디 하지 않고, 3남매를 잘 키워주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굽이굽이마다 생의 용기와 지혜로 저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집 사람입니다.아직까지 그 흔한 여보소리 한번 못했습니다. 36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제 구두를 닦아 출근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관장은 "무심한 남편은 한번도 고맙다고 따스한 말 한마디 못해준 못 난 사람이었다"면서 아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보! 정말 수고 많이 했소, 내일부터 제 구두는 제가 딲고 다니겠습니다."
박 관장은 고마움을 알고, 고마움을 가슴 깊이 간직해 놓은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풍경이 절묘하면 할 말을 잃고, 사랑이 너무 깊어도 말을 잃는다고 했던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던 탓일까. 퇴임사를 읽어내리면서 내내 맺힌 감정을 떨구지 못해 하던 박관장은 인생3막을 위해 느림의 미학도 알아보고, 바보스럽게도 살아도 보고 싶다고 했다. 안가 본 길도 가보고, 그동안 못 꾸민 인생도 가꾸면서 봉사가 무엇인지도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러면서 박관장은 그동안 아껴주시고 이끌어 주셨던 모든 분들, 함께한 소중한 인연과 아름다운 기억들을 늘 가슴에 새기겠다고 했다.
남유진 시장은 공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안고 떠나는 박관장에게 "10년 동안 함께 공직생활을 하면서 맺은 아름답고, 고운 인연을 늘 가슴에 새기겠다"면서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힘든 명예퇴임을 하는 박관장의 앞날에 행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등을 두둘겼다.
한편 퇴임식장에는 구미시, 구미시 직장협의회, 공공 도서관 협회, 형곡동 기관단체장 협의회, 동기회 등으로부터 보내온 감사패와 기념패가 빛을 발했다.
36년 공직 생활 동안 박관장은 내무부, 행정자치부, 재정경제부, 행정안전부 장관상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신평1동장, 무을면장, 새마을 과장과 시립도서관장을 거쳐 공직의 길을 떠나는 박관장에게 정부는 녹조근정 훈장을 내렸다.
박관장의 1남 2녀 중 아들은 경찰관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고, 장녀는 경기도립 성남도서관(7급), 차녀는 삼성전자에 근무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의 구두를 닦아드렸다는 벨라뎃다 형님의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주변의 모범이 되곤했어요. 이제 남편과 함께 여행도 다니시면서 쉬엄쉬엄 행복하게 사세요.
03/07 23:50 삭제
박관장님 주변에 이분이 뉘시지요? 박관장님을 아주 잘 아시는 분이신데...아마 박관장님은 박씨의 기대 만큼이나 선망의 대상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축복합시다.
03/02 16:48 삭제
당신 특유의 넉넉함과 신중함으로 퇴임 이후의 삶을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꾸려 나가세요.
유독 자신을 잘 다스리면서 살아가는 어느 성직자처럼 당신에게는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의 그러한 삶을 선망할 것입니다.
03/02 16:11 삭제
세월을 참으로 빠르군요, 무을면에 계실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퇴임이라시니, 앞날에 행복과 건강이 깃들기를 빕니다.
03/01 20:00 삭제
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03/01 19:59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