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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존경받는 부자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1년 06월 18일
심 정규 경북도의회 의원 (교육위원회)
ⓒ 경북문화신문

 


 


 


 


“민족 문화 유산의 수호신”으로서 근대 문화사에 걸출한 발자취를 남긴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은 조선 말 중추원 의관(議官)을 지낸 무관출신 전영기의 아들이다.


서울 종로 배오개, 지금의 종로4가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면서 당시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황해도와 충청도에 논 800만평(4만 마지기)를 소유해 한 해 수확량만 해도 2만석일 만큼 그 당시 간송의 집안은 화신백화점 박흥식과 광산 재벌 백모 씨와 더불어 서울의 3대 거부로 불릴 정도였다.


일찍이 휘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대 대학 법학부에 다니던 간송의 꿈은 부친의 희망이기도 했던 변호사였다.


하지만 대학 졸업반이던 1929년 양부 전명기에 이어 친부 전영기마저 세상을 떠나자, 집안의 유일한 혈손인 25세의 청년 간송은 조상대대로 이뤄 놓은 많은 재산을 어떻게 지키고,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였다.


간송은 어려서부터 외종형인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소설가)의 영향을 많이 받아 민족의식이 투철하였다.


그리고 휘문고보 시절 미술교사였던 춘곡 고희동(春谷 高羲東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를 찾아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상의하곤 했다.


평소 간송은 스승에게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고자”한다고 늘 말을 했기에 춘곡은 간송을 위창(葦凔) 오세창(吳世昌 1864-1953)선생에게 소개를 한다.


3.1만세 사건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고 그로인해 2년의 옥고를 치룬 서예가이자 언론인인 위창 선생을 만난 것은 운명적이었다.


오세창 선생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일이 나라를 지키는 일과 같다”며 전형필에게 “간송” 이라는 아호와 함께 역대 서화가들의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과 역대 191인의 작품 251점을 정리한 화첩인 <근역화휘>을 선물했다.


간송은 위창선생의 격려에 힘입어 <근역서화징과 근역화휘>를 하루도 쉬지 않고 보면서 안목을 키워 나갔다.


그렇게 안목을 키워가던 간송은 조선의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창시자인 겸재 정선의 “인곡유거(仁谷幽居)”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수집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모든 그림이 중국풍을 모방한 것이 주류일 때 겸재는 금강산을 비롯하여 인왕산 풍경 등 조선의 산수를 직접보고 그리는 실경산수를 택했다. 간송은 진경산수에 관심을 가지면서 겸재 작품을 모두 161점이나 수집했다.


특히 회화 수집과정에서 간송은 오세창 선생의 철저한 고증과 감식을 거치면서 모두 명품만 모았다.


당시 일제 강점기에는 서화뿐만 아니라 도자기. 불상. 석물 등 소위 골동품의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싹쓸이하는 시기였다. 간송은 이를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화 수집으로 출발한 간송은 조선의 민족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도자기. 불상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중 수집 할 당시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하면,25세부터 일본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조선의 도자기에 심취해 20년 동안 고려청자의 명품만 골라 수집한 영국의 귀족가문 출신 존 개스비가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고려청자 22점을 처분한다는 소문을 접한 간송은 수집 인생 최대의 승부를 걸었다.


워낙 큰 거래이다 보니 수차례 접촉을 하여도 성사가 되지 않자, 간송은 개스비를 조선으로 초청하여 그 때 한참 공사 중이던 “간송 미술관”으로 데리고 가 자신이 단순한 취미나 탐욕 때문에 고려청자를 구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명품을 이 곳에 수장하여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 주려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에 감동을 한 존 개스비는 30대 초반의 흰 두루 막을 걸친 청년 간송 에게 40만원을 받고 양도했다. “고려청은 조선인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40만원은 기와집 400채 값이다. 요즘으로 치면 서울의 아파트 400채 값이니 실로 놀랍다. 간송의 배짱도 대단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4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부 때부터 내려오던 공주의 땅 1만 마지기를 처분했으니 말이다.


이 때 구입한 “기린형 향로”는 국보 제65호로 지정되었으며 20점 중 7점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지키려던 간송의 압권은 역시 <훈민정음>이었다.


안동의 진성 이씨 집안의 서예가 이용준은 “가문의 선조가 여진 정벌에 크게 공을 세워 세종대왕으로부터 하사받아 세전가보(世傳家寶)로 전해내려 오고 있는 훈민정음을 보관하고 있었다.


당시 1943년 일본이 한글 말살 정책을 펴는 등 식민정책이 극에 달한 시기에 이용준은 사회주의자 김태준에게 이를 알렸고, 평소 간송이 훈민정음을 구 하는 게 꿈이란 소릴 듣던 그는 이를 간송에 소개하자 간송은 1만원에 훈민정음을 구입하게 된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진품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은 첫머리 두 장이 없었다. 이유는 언문책 소지자를 엄벌하려 한 연산군 때 첫머리 두장을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은 훈민정음 은 만들어진지 500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고, 간송은 수집 품 중 최고의 보물로 여기고 애지중지했다.


이 후 간송이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62년, 훈민정음은 국보 제 70호로 지정됐고 이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이 공이 얼마나 큰가?


한 편 훈민정음을 구해 간송 에게 소개한 사회주의자 김태준은 이듬해 일경에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근대사에 이르러 조선의 명문거족과 거부가 얼마나 많았는가?


하지만 모두 자기 집안의 부를 쌓기에 골몰하였고, 일제 강점기엔 친일을 하고 해방 후는 좌익에 걸리고 독재와 결탁하는 시류였으니, 흠집 하나 없는 온전한 명문가(名文家)는 없다.


이러다 보니 한국 사회에는 존경받는 명문가나 지도자가 없다고 들 하는 것이다.


왜? 후세 사람들이 간송 집안을 명문가로 칭송하는가?


그는 아무도 가지 않는 외로운 길을 갔기 때문이다. 논 밭 팔아 사기그릇이나 사는 등 풍류를 즐기기 위해 서화 골동을 모은다고 세상은 손가락질 했지만 지금도 “간송 박물관”에 소장된 한국의 문화유산 수 만점은 한국의 자존심이다.


이곳에는 국보 제65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포함하여 국보로 지정된 것이 12점, 보물이 10점, 서울시 지정 문화재 4점이 소장되어 있으니 말이다.


보성중학교를 인수해 후생들에게 민족주의 교육에 힘쓴 업적도 찬란한 업적이지만 그 이후에 탄생한 “간송 학파”라는 한국 문화의 거두 즉, 최순우 최완수 등이 중심이 되어 야산학파와 함께 강호학파를 형성하여 우리나라 문화계의 중심이 되게 한 것은 길이 빛날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열명의 정승을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는 우당(友堂)이회영(李會榮) 집안도 아니고, 독립운동과 민주투사 그리고 인재배출의 요람인 전라도 신안군의 인동 장씨 집안도 아닌 간송 집안이 대대로 칭송을 받는 것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우리 문화유산을 지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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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정론직필!!
예방법없음
따뜻한 기사 잘 보았습니다. 주변에서 볼수 있지만 관심을 주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후원해 주신 에스엠디에스피 대표님과 선행을 알려주시는 경북문화신문과 김예은 학생 기자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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