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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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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 일본은 기원전 660년에 탄생한 신무천황(신화시대 인물)이래 현재 125대 아키히도에 이르기 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만세일계(萬歲一 系)전통으로 지배하다가, 1192년 가마쿠라 막부(幕府)가 들어서면서 천황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 더 이상 나갈 곳이 없는 섬나라 일본의 생존방식은 권력구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힘 있는 쇼군들은 기존의 왕조를 멸망시키고 천황에 등극, 나머지 영주(領主)들의 공공의 적이 되기보다는 천황을 상징적인 존재로 존립시키고 영주들에게는 실권을 가지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달라진 통치방식은 영주가 각자의 영지를 통치하는 봉건제 방식의 지방자치를 하게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의 번에는 영주를 중심으로 사무라이 집단, 농민, 상인으로 구성된 평민이 함께 존재 한다. 귀족인 영주는 자신의 번을 통치하지만 외적이 침입한 경우 영지를 지키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목숨을 바쳐 싸웠다. 영지는 자신의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영지의 주민들은 영주에게 충성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봉건제의 특징은 영주는 영원히 세습한다는 것이다. 사무라이나 평민 들은 신분상승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었다. 대장장이는 대장간 기술에 매진하고, 도공은 대를 이어 도자기 만드는데 집중 했다. 이러한 장인 정신은 결국 오늘날 일본을 제조업과 소재산업분야에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데 지렛대 역할을 했다.
천황을 중심으로 봉건제를 거친 일본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는 영국과 푸미폰 국왕이 있는 태국과 함께 내각제가 발달한 나라로 분류된다. 국민을 한군데로 모아줄 상징적인 왕이 존재했기에 내각제가 발달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대륙에 위치한 중국은 다르다. 기원전 770년 주(周)나라 수도를 낙양으로 옮긴 때부터 공자가 “춘추(春秋)”라는 역사책을 저술한 때를 “춘추시대”라 하고, 진(晉)나라가 한, 위, 조 세 나라로 나누어 갈라진 때를 “전국(戰國)시대”라 한다.
당시 천하의 지배자 천자는 아들 들을 제후로 임명해 분봉(分封)을 했다. 이러다 보니 춘추시대에 제후국(諸侯國)이 무려 140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당초, 형제나 친척관계로 이루진 제후국 들은 족친관계가 멀어지자 서로 이익을 위해 다투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영토와 식량 등 사소한 문제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춘추시대에는 한 가지 룰이 있다.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를 섬기면서 제후국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다툼이 있는 경우 패자(覇者)가 나서서 이를 정리했다. 다소 여유와 낭만도 있는 시대였다.
그 후 전국시대로 들어서면서 낭만과 멋은 오간데 없고 먹고 먹히는 전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한편 맹자는 천명(天命)사상을 주장하면서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고 설파 했다. 특히“백성의 지지를 받는 자가 천자가 되어야 하며 군주의 통치권은 하늘로부터 부여 받는다”는 주장을 한다.
더군다나 “인의를 해치는 군주는 군주가 아니다.”라며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옹호하는 입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왕이 민심을 잃으면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는 사례를 흔히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춘추, 전국시대를 지나 기원전 200년 경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한 후 진나라도 오래 가지 못했다. 이후 중국의 왕조는 한. 수. 당. 송 .금. 원. 명 .청 등으로 이어 졌기 때문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나”라며 진승과 오광이 중국 최초로 농민 봉기를 한 것이 기폭제가 되면서 한낱 시골의 건달출신 인 유방은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건국했다. 이때부터 제후국이 지배하던 봉건제를 뒤로한 채 중앙집권제로 바뀌면서 왕조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후 중국은 힘 있는 자가 황제가 되는 시대를 맞게 된다.
우리나라는 대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중국과 유사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의 고대, 중세 역사는 생략하기로 하고 근 현대사로 넘어가 보자. 이 시대부터는 양반과 상놈 등 반상(班常) 구분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질서가 생기기 시작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판검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면 약관의 나이일지언정 “영감”이란 소리를 들으며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고, 상류층에 진입한다. 능력만 있으면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소위 벼락출세가 가능한 시대인 것이다.
관료로 나가는 것은 또 어떤가?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사무관이 된다. 한때는 지방의 군수를 사무관으로 임명한 적이 있었으니, 20대 군수가 탄생하기까지 했다.
또 머리 좋은 사람은 의사, 교수, 공인회계사가 돼 부와 명예를 보장받는다. 이러니, 죽기 살기로 수능에 목을 매달게 되고, 부모 또한 자신의 인생 전부 바치더라도 자식의 출세를 위해 희생하려고 한다. 단 한 번의 도전으로 신분 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출세지향의 세태 때문에 적성과 능력은 뒤로 한 체 모두가 고시. 공무원시험. 교사 임용시험. 대기업 입사에 목을 매달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부모들의 광적인 교육열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지독한 교육열은 경제성장에 큰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질주를 멈추어야만 한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메리카 드림을 만든 원인도 따지고 보면 봉건제 잔재가 남아있는 구대륙 유럽보다 신대륙에서 인생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처럼 중앙집권적 왕조시대가 아닌 “봉건제”를 거친 일본 과 독일의 경우에는 주어진 신분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살려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돼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을 최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를 이어 기술을 다듬고 있으니, 명장이 속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통계에 따르면 200년 이상 된 전 세계의 기업 5.586 개 중 일본이 3.164개, 독일이 837개라고 한다. 100년 이상 된 기업은 일본이 5만여 개에 이를 정도다. 반면 한국은 불행하게도 1896년과 1897년에 각각 창업한 “두산”과 “동화약품”뿐이다.
일본엔 500년 이상 된 기업만도 32개나 있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우동만 만들어 온 가가와 현의 “사누끼 우동”과 한국의 “할매 국수”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각자의 위치에서 적성에 맞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고소득인 판검사, 의사, 교수가 존경받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을 우러러 보는 사회라야 성숙되고 건강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100년 이상 된 기업이 불과 2개뿐인 우리나라가 도약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것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생을 보장받는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광적인 교육열기도 사그라 들게 될 것이다.
구미에도 대를 이어가는 조그만 자영업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북문화신문도 지역신문으로서 이를 널리 알림으로서 역할을 다해 주세요
08/13 19:59 삭제
원인은 밝혀주셨는데 대안이 좀 있었으며, 좋은 글 속에 아쉬움이 남는 구려
08/13 13:30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