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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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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탑정형외과 최중근 원장>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는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유래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상대인 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는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 작품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젊은이들의 자살 사태가 벌어졌고, 일부 유럽권 나라에서는 책 발간이 중지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빗 필립스는 이 현상을 일컬어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최근 한두달전 일주일 사이에 유명인들의 자살이 잇달아 전해졌다. 활력 넘치는 현장중계로 안방에 얼굴을 알린 스포츠채널의 한 젊은 여자 아나운서의 투신자살이 충격을 준 가운데 그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아 아이돌 그룹 출신의 가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6월, 한류스타 박용하가 목숨을 끊은 지 1년 만에 또 한 명의 한류스타의 죽음이 전해지면서 이웃 나라 일본도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5월22일 정다빈의 영혼결혼식, 6월30일 박용하의 1주년 추모행사를 거행하는 모습들을 각종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대서특필 했다. 이런 보도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살이 미화되는 등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지난 7월 11일 구미에서 집단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남녀 4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4명은 특별한 공통점이 없고 유서에 개인 빚 등 각자의 고민을 써 놓고 동반자살 했다고 한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은 무려 28.4명으로 OECD 평균인 11.4명에 비해 3배나 높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하루에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평균 42명에 달할 정도이니 실로 심각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늘어나는 자살사건 가운데서도 연예인의 자살이 더욱 심각한 것은 그 파급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을 보면, 연예인 자살의 파장이 큰 이유는 “저 정도 예쁘고 저 정도 능력 있는 연예인도 자살하는데 내가 살아서 뭐하나” 이런 생각을 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나 위험한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살이 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통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늘어가는 불행한 자살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 있다. 투신자살을 택한 아나운서의 죽음을 둘러싸고 인터넷과 SNS의 사생활 침해와 익명의 폭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과 SNS로 대변되는 세상에서는 특히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로 전파시키는 특성이 있다. 물론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서 해당 연예인에게 약이 될 때도 있지만, 사생활을 고스란히 까발린다는 점에서는 이번과 같이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한다. 사용자들의 자정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도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자살방지와 유가족 지원을 위한 법률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살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문 상담인력들을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자살 미수자들의 재시도를 막기 위해서 사후 관리에 세심한 관심을 쏟으며,, 우울증 환자 등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 치료 프로그램과 조기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병원별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을 정도다.
이들 선진국의 제도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벤치마킹해 속히 관련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낮다는 영국은 언론의 선정적인 자살보도를 막는 노력도 하고 있다. 역시나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