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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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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귀족의 의무”를 뜻한다. 부와 권력 그리고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스나 로마 등 중세기 까지는 귀족들의 특권에 따른 책임을 의미했고, 오늘날에는 전반적인 사회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례로 경부 최 부자 집과 “운조루” 류 부자 집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경주의 최 부자 집은 병자호란 때 숨진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최진립(1568-1636)이 공신 토지를 기반으로 만석의 재산을 일으키면서 비롯됐다. 그 후 300년을 이어오다가 12대 최준(1884-1970)대에 이르러 전 재산을 그의 뜻에 따라 대구대학교(영남대학교 전신)재단에 기부하면서 부자 가문의 막을 내렸다.
경주 최 부자 집이 존경받는 가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단지 300년 동안 부를 지킨 것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와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은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문의 6훈(六訓)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와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로 이어지는 자신과 집안을 다스린 지혜를 보면 조선을 대표하는 존경받는 부자 가문으로 손색이 없다.
이 뿐이 아니다. 구한말에는 의병 신돌석 장군을 집으로 피신하게 했고, 최익현 선생이 여러 날 머물며 민족의식을 불 태울 수 있게 했다. 또 안희제와 함께 백산상회를 설립해 막대한 독립자금을 제공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는 등 사회적 국가적 책임을 실천한 경주 최씨 가문의 윤리, 민족의식은 만대(萬代)에 걸쳐 칭송받을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한편 호남의 거부 구례 운조루의 류 부자 집도 만만찮다. “구름은 마음대로 산을 넘나들고 새들은 날기를 지쳐 둥지로 돌아가는데 나는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까”하고 읊은 도연명의 시에서 따온 문화 류씨의 고택이름 운조루(雲鳥樓)에는 200년이나 된 큰 쌀통이 있다.
쌀이 2가마니 반 들어가는 원통형 뒤주에는 쌀을 빼 낼 수 있는 아래 부분에 마개가 있다. 이곳에는 누구나 마개를 돌려서 쌀을 빼 갈 수 있다는 뜻인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류씨 집안은 한해 수확량의 20%를 굶주린 마을 이웃을 위해 사용 했다.
서양의 경우를 보자, 기원전 753년 청년 로물루스는 로마를 건국한 이후 왕과 원로원 그리고 시민회의 등 3기관에 의해 운영토록 하는 독특한 국정운영 시스템을 채택 했다.
세습이 허용되지 않던 왕은 시민회의에서 선출했고, 종신제였다. 또 원로원은 왕에게 조언을 하는 기관으로서 역할을 했고, 시민회의는 왕이 결정한 중요 정책에 거부권을 행사 하는 등 권력의 삼권 분립을 통해 국가를 운영했다. 이러한 방식은 영웅이나 독재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합의의 결과였다.
이러한 왕정(王政)은 훗날 공화정(共和政)으로 이어졌고, 왕이 아닌 임기 1년의 집정관(執政官)이 대신 하는 제도로 진화해 나갔으며, 카이사르 이후 제정(帝政)로마 시대로 이어 나간다.
로마 시민이면 누구나 시민회의를 통해 투표권이 부여됐다. 당시의 투표권은 권리이자 의무였다.
로마 시민에게는 또 병역이라는 직접세가 부과됐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모두가 공평하게 수행해야 하는 의무였던 것이다.
넓은 장원(莊園)을 가진 명문가인 로마의 귀족은 능력에 따라 원로원에 진출이 가능했다. 당시로서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귀족은 평소 그를 따르는 평민들의 후원자(Client)가 돼 혼담이나 교육. 취직은 물론 복잡한 소송 문제까지 들어 주는 등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선망의 대상이었던 귀족들은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경우 가장 먼저 전쟁터로 달려 나갔다. 평소에는 안락함을 즐겼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국가를 지키는 책무를 절대의무로 받아들이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민들이 지도자를 뽑았기 때문에 로마는 왕이나 집정관의 나라가 아니라 “ 자신이 곧 국가이다.”라는 인식을 했다. 이 때문에 이들 지도자들은 숱한 전쟁을 거치면서도 전의(戰意)를 잃지 않았다. 전쟁이 곧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는 의무로 받아들인 인식의 전환으로 말미암아 군의 사기는 어떤 군대보다 높아 전쟁의 승패는 보나 마나이다.
특히 전쟁에 출정할 때 로마의 지도자들은 평민과 다른 부담을 져야 했다. 재산이 많은 귀족은 능력에 따라 중장비 보병과 기마병을 이끌고 나갔다. 반면 귀족의 후원을 받아온 평민은 호위할 무기만 지참한 체 기꺼이 귀족의 병사가 되어 함께 출정 했다. 로마인들은 결코 용병 고용을 용납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생활능력이 전혀 없는 무산계급 자는 병역을 면제해 주는 병역 특례를 부여했다. 피로써 납세의무를 다하기 때문에 “혈세”이다. 실로 귀족들은 피로서 책무를 다했던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명문가로 “경주 최 부자와 운조루 류씨 집안”을 얘기하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로마나 수 백 년을 이어 가문을 이어간 독일의 하노버가(家)처럼 상류층의 책무를 찾기 어렵다. 이는 한국인의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지배구조에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봉건제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나 신분상승의 유혹에서 벋어날 수 없게 된 것이 이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근, 현대사에 있어서 최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부류는 정관계 인사와 재벌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명문가를 형성한 그 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지원과 시혜를 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사회나 국가에 대해 떳떳한가, 그들이 사회와 국가에 대해 책무를 다 할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 지고, 국가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디 Noblesse oblige 정신을 지켜 주기 바란다.
나눔은 미풍양속일진대 요즘에는 있으면 배풀줄도 몰르니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있는 것도 아니도 없는 사람이 천년만년 가난한 것도 아닌데
서로가 도우면서 살아갔으면
08/27 19:50 삭제
참으로 의미가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 자신만을 위한 성을 쌓지 않는 다는 것이 얼마니 힘든가요.
고사성어에서 일반적인 내용으로 칼럼이 변화했네요, 최부자, 류부자의 사례가 참 좋네요. 많이 얻고 갑니다
08/27 10:08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