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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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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바로 지났는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전국이 30도를 훌쩍 넘는가 하면 일부 지방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기상청 예보로는 9월 중하순까지 늦더위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물론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어와야 한가위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겠지만 그래도 한가위는 한가위다. 명절이 그러하듯 가족 친지들을 만날 마음에 설레고 마음도 분주해지는 때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옛 한가위 세시풍속에 '반보기'라는 게 있다. 한가위 무렵,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날을 정해 서로 얼굴을 보는 것이다.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만나 서로 준비해 온 음식을 풀어 반나절을 함께 보내면서 애틋한 정을 나누었다. 아무래도 시집간 여자들이 친정 나들이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에 반보기 덕분에 한가위를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 새댁들이 많지 않았을까.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는 속담처럼 친정 가는 길과 꽃놀이 가는 길은 참으로 들뜨고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원래 '반보기'는 중로상봉(中路相逢)이란 말에서 유래했는데, 말 그대로 길의 중간에서 만나는 것을 뜻한다. 모녀지간만이 아니라 여인들 사이에서도 반보기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한 마을에 사는 여인들이 한가위 전후해 날을 잡아 이웃 마을의 여인들과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고, 소녀들도 이 날에는 단장을 하고 반보기에 나섰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혼담이 오가기도 했다. 명절의 미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조상들의 옛 풍습을 보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운 사람들의 만남이라는 그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유교적 풍습을 따르는 우리 사회에서 명절 때 마다 가장 바쁘고 힘든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특별히 여성들을 위한 이런 세시풍속이 있었다는 게 의미심장하고 놀랍기까지 하다. 왜 이토록 좋은 세시풍속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몇 해 전인가, 한 신문에 일급호텔의 '추석 반보기' 이벤트 광고가 실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다 빙그레 웃은 적이 있다.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 여성고객을 위한 추석 반보기 패키지' 그 문구가 재미나서 기억이 난다. 모녀지간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수영장, 사우나 등이 포함된 추석 이벤트였는데, 아이디어도 그럴듯했다. 인간미 넘치는 '반보기'의 풍습이 현대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맘이 든다.
한가위를 앞두고 어머니들의 손길이 바빠지고 며느리들 맘도 분주하다. 제사상 준비하랴 명절음식 마련하랴, 고향 길 떠날 채비하랴 여념이 없을 때다. 이럴 때일수록 반보기의 정신을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꼭 서로간의 만남의 형식이 아니라도 어떤 형태로든 그 정신을 음미면서 되살려나갔으면 한다. 즉 가정에서 고생한 어머니를 위해, 아내를 위해 배려하는 문화가 싹 텄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바로 반보기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길일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네 한가위 명절은 햅쌀과 햇과일 등 온갖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오죽하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이 있을까. 또 '옷은 시집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라는 말도 있다. 일 년 중 가장 잘 먹고 넉넉하게 베푼 날이 바로 한가위였다. 올해는 폭우로 인해 예년만큼 풍성한 추석 풍경은 볼 수 없겠지만, 마음만큼은 꽉 찬 보름달과 같길 바란다. 또한 추석에 농부가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땀 흘려 지은 한 해의 결실을 거둬들일 고민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나온 한 해를 뒤돌아보는 시간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