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엘부르즈(5,642m)부터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m), 북미의 매킨리(6,194m), 남미의 아콩카구아(6,962m), 오세니아의 칼스텐츠(4,884m),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남극의 빈슨메시프(4,897m)까지 결코 순탄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등정에 모두 성공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끝까지 도전하게 했을까. 첫 등정부터 마지막 등정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그가 운영하는 등산용품점을 찾았다.
“정상에 오른 소감이요? 기쁘다는 마음보다 내려가는 것을 먼저 생각했어요.”
대원들은 (빈슨메시프)정상에 오를 때 날씨가 좋지 않아 예정된 일정보다 3~4일 빨리 올라갔다. 날씨가 계속 좋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더 나빠지기 전에 정상에 오르기 위해 일정을 당겼다. 장헌무 대장은 안전한 곳에 내려왔을 때 비로소 정상의 기쁨을 만끽했다고 한다. 산에서의 사고는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많이 나기 때문에 늘 내려오는 길을 걱정한다는 것.
위험한데 왜 오르나?산에 오를 때 행복하다. 산악은 위험하고(dangerous) 어려우며(difficult) 1, 2개월 씻지 못하니 더러운(dirty) 3D 과정이지만 매력이 있다. 오를 때 힘들지만 힘든 만큼 쾌감이 있다. 눈길을 걸어가는 길, 썰매를 끌고 가는 길, 배낭을 짊어지고 빙벽을 올라가는 길, 바위를 타고 정상에 다다르는 길 등 각각의 과정을 헤쳐나갈 때의 쾌감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을, 존재감을 산에서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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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빈슨메시프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구미시산악연맹 세계최고봉 원정대(구미시 제공)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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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정상인가?산을 오르는 목표는 정상이지만 살아 돌아오는 것이 먼저다. 산에 오를 때마다 매번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1995년 25세 때, 해외 등반(에베레스트)에서 처음 정상 정복에 실패했다. 나와 상관없이 선배가 탈진해서 데리고 오는 바람에 정상을 가지 못했다. 억울해서 울기도 했고 정신적 충격이 커 산을 가지 않을 생각도 했다. 그 후 몇 해 뒤에 후배들과 티벳의 5,800m 산에 올랐는데 정상을 100m 앞에 두고 내려와야 했다. 시간이 촉박하고 장비가 모자랐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진행하면 정상을 갈 수도 있었지만 돌아올 자신이 없어 고민 끝에 되돌아왔다. 당시 후배들도 몇 해 전의 나처럼 똑같이 울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처음에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경험을 했기에 돌아설 수 있었다. 돌아설 줄 모르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돌아설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1~2년, 훈련을 포함해 길게는 3년의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겪어보니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먼저다. 무리하게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정상을 오르는 것에 목표를 두지만 오르는 과정을 중시한다.
산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1990년 대학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악동아리에서 산을 배웠다. 처음에 텐트 치고 계곡에 발 담그고 노는 곳인 줄 알고 산악동아리에 가입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암벽등반, 빙벽등반이 시작됐고 차츰 산에 매력을 느꼈다. 후배 때는 배우고, 선배 때는 가르치면서 책임감도 생겼다. 처음 간 해외 등반이 암벽으로 유명한 미국 요세미티의 엘캐피탄이었다. 3박4일만에 정상에 올랐다. 축구선수가 골을 넣을 때처럼 꿈꾸었던, 목표했던 것을 이룬 성취감을 느꼈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95년부터 해외 등반을 시작해 지금까지 70회 이상 다녀왔다.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했다. 7대륙을 되돌아보니 대륙마다 산들의 다양함이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러시아의 해바라기 농장을 지나간 엘브루즈, 먼지 펄펄 나는 사막을 가로질러 킬리만자로에 가면서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원초적 자연의 매킨리, 아르헨티나의 굴곡을 볼 수 있었던 콩카구아, 환상적 밀림의 칼스텐츠, 인도의 측량 국장 이름을 딴 에베레스트까지 각 대륙의 특징을 몸으로 느꼈다.
2015년 에베레스트 등정은 지진 발생으로 중도 하산한 것으로 기록됐다.2015년 에베레스트 등반은 정말 위험했다. 네팔에서 강도 5.8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베이스캠프에 눈사태가 일어나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0m의 높이에서 수백톤의 얼음덩어리가 바로 20m 눈앞에서 떨어졌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처럼 폭발력이 엄청났다. 전쟁터 같았다. 지진이 전진인지 본진인지 알 수 없어 더 큰 것이 올지 모르는 공포와 불안이 컸다.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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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빈슨메시프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구미시산악연맹 세계최고봉 원정대(구미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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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륙 최고봉을 등정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가장 힘든 것은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산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어려운 것은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다. 산에 가면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오르는 것이다. 30년이 지나서 느꼈다. 누군가는 겁을 먹고, 누군가는 위험을 감지하고 긴장해서 균형감을 놓치기도 한다.
30여년동안 등반을 하면서 산악 역사에 족적을 남겼을 것 같은데.한국의 신기록을 2개 세웠다. 에베레스트에 3번 갔다가 한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00년, 2005년, 2025년 모두 스스로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문제로 중도 하산해야 했다. 4번째 도전인 2017년에는 성공했다. 또 다른 신기록은 사람이 오르지 못한 미답봉 3곳을 세계 최초로 올랐다는 것.
이외에도 오랜 시간 등반하면서 팀원을 단 한 명도 잃지 않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산에 가면 완벽하게 움직인다. 계획이 확실하지 않으면 등반이 어렵다. 분·초단위, 액션단위 등으로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운다. 큰 사고가 없는 이유다. 해외에 처음 간 것이 등반이었다. 해외에 대한 두려움을 철두철미한 계획으로 극복했다.
앞으로의 계획은?2008년 구미시산악연맹의 첫 등반으로 히말라야의 초오유(8201m) 정상에 올랐다. 당시 구미시민 8,201명의 20년 후의 자신에게 쓴 편지를 담은 USB를 타임캡슐에 넣어 묻고 왔다. 20년이 되는 2028년 다시 찾아와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2028년은 구미시 승격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것은 지자체로서는 구미시가 처음이다. 을사년 새해, 7대륙 최고봉 등정 성공 소식은 구미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이번 성과가 오는 5월 개최되는 ‘2025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성공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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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함께한 내공이 느껴집니다. 멋지네요.!!
01/24 21:06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