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식(청소년문학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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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동식(청소년문학교육평론가)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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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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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우화 소설 이름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의식주(衣食住)가 모두 온전하지 못한 가난한 구두장이 가정이다. 곧, 집은 농부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입은 풀칠하기 바쁘며, 옷은 누더기가 다 된 외투를 부부가 번갈아 입어야 하는 처지다.
이런 가정에 들어와 구두 수선 일을 돕는 ‘미하일’은 원래는 천사였으나, 하느님의 벌을 받아 지상에 추락한 사나이다. 그는 하느님이 내린 세 가지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날에야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작품의 전개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미하일이 그 세 가지 말씀의 뜻을 파악할 때마다 미소 짓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그 말씀들은 곧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인생의 지침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첫 번째 질문은 ‘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인간의 내부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구두장이 세몬과 그의 아내 마트료나가 어려운 처지임에도 자기를 집에 데려다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데서 깨닫고 미하일은 첫 번째 미소를 지었다. 이와 유사한 감동적인 행동을 최근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빌 펄롱’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연탄 배달 일을 하는 그는 이미 딸 다섯을 가진 가장으로서 앞으로의 ‘고생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수도원에서 외면당하고 석탄 광(창고)에서 지내는 소녀 ‘세라 레드먼드’를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두 번째 질문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이다. 이에 대하여 미하힐은, 호사스럽게 살았고, 체격도 장대한 사나이가 곧 죽음에 임할 줄을 모른 채 일 년 동안 닳거나 찢어지지 않는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깨닫는 일이 허여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즉, 인간이 하나로 뭉쳐 사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단순히 ‘자신을 돌보는 데’가 아니라 자신을 포함해서 만인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시한 것이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다시금 ‘사랑’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세 번째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이에 대하여 미하힐은 자신이 낳지 않은 쌍둥이 여자아이를 기르는 어떤 부인을 통해서 ‘신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곧, 두 고아들이 잘 자라 온 것은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해 준 덕분이 아니라 한 여인에게 사랑의 마음이 있어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은 측은지심, 혹은 연민의 정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사랑으로 산다는 것: 길들이기-관계 맺기-공동의 꿈 실현하기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안도현의 동화 『관계』, 최현진의 『스파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사랑으로 산다’는 말의 실천적 의미에 대해서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안도현의 동화 『관계』, 그리고 최현진의 청소년 소설 『스파클』을 예로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 이에 대하여 『어린 왕자』에서는 ‘길들이기’와 책임을 말해 준다. 어린 왕자가 이것을 터득하게 되는 계기는 지혜로운 한 마리 여우와의 만남이었다. 여우는 왕자에게 자신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면 자신을 길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길들인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묻자 그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곧, 왕자가 여우를 길들인다면 서로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안도현의 어른을 위한 동화 『관계』(문학동네)에는 이 문제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도토리와 낙엽의 대화에 의하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꿈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도토리의 경우, 자신의 꿈만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낙엽들의 꿈까지도 실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도토리가 자신의 꿈만을 실현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사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낙엽들과 공통의 꿈을 실현시켜 가도록 한다는 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원리는 청소년들의 진로 동기 및 가치관 설정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현진의 청소년 소설 『스파클』의 주인공 ‘배유리’는 자신의 최종적인 꿈을 확정할 때 이런 원리를 따르고 있다. 그녀는 사고로 다친 눈을 치료하기 위해 각막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동생격인 이시온을 통해서 기증자가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친한 친구가 된 이시온도 ‘제주도든 카트만두든’ ‘멀리 떠나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유리는 ‘하늘을 나는 사람’, 곧 파일럿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사람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그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미하일’이 해결한 하느님의 두 번째 말씀을 다시 듣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로 뭉쳐 사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자신을 돌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포함해서 만인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시한 것이란 뜻으로 여겨도 좋지 않을까 한다. 그리하여 너와 나의 따스한 관계 속에서 우리 모두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모습이야말로 사람들이 사랑으로 산다는 것의 참다운 실천적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 사람은 확실히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 대상을 책임성 있게 길들이며 산다. 길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호간에 유의미한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공동의 꿈을 함께 실현해감을 뜻하는 것이다.
<참고 서적>
우동식, 『청소년의 아픈 자리, 소설로 어루만지다』(정인출판사, 2016), 139~143쪽.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북스, 2023), 116~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