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청 홈페이지에는 “냉산을 일명 태조산이라고도 한다”, “고려 태조의 얼이 깃든 태조산 아래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가 있다” 등과 같이 냉산을 태조산으로 표기한 내용이 다수 존재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서도 '구미시'와 '도리사'를 를 검색하면 “해평면과 도개면의 경계지역에 솟은 냉산(冷山, 일명 태조산, 692m) 중턱에 도리사가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태조산에 있는 절' 등 냉산과 태조산을 동일시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 밖에도 학술 논문, 언론 보도, 구미문화원 발간 자료 등 다양한 곳에서도 냉산과 태조산을 같은 산으로 혼용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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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지도서(1760경,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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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여도(1858, 서울대 규장각 소장)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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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문헌, 고지도 등에서는 태조산과 냉산을 별개의 산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611)」, 「일선지(1618)」, 「동국여지(1866)」, 「동국여지지(1656)」, 「여지도서(1760)」, 「선산읍지(1926)」 등에는 태조산을 “선산읍 동쪽 13리, 고려 태조가 백제를 정벌할 때 머문 곳으로 이 때문에 태조산이라 부른다”고 소개한다. 반면 냉산은 “선산읍 동쪽 15리, 낙동강 건너 해평에 위치한 팔공산의 지맥으로 도리사가 자리하며 일명 도리산이라 한다”고 설명해 명칭의 유래와 위치·지형이 전혀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고지도인 「여지도서」와 「동여도」 역시 태조산과 냉산을 낙동강 서쪽과 동쪽에 각각 다른 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도리사 아도화상 사적비에도 “선산부 냉산 도리사”라고 명시돼 있으며, 선산 출신 인물 송당 박영이 “낙수(낙동강) 태조산 기슭에 집을 짓고 송당이라 편액했다”는 「일선지」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태조산과 냉산은 전혀 다른 산이다. 그렇다면 두 지명이 언제부터 혼용되기 시작했을까. 전문가들은 1977년 문화재관리국이 발간한 『문화유적총람』을 그 출발점으로 지목한다. 이 책에서 ‘숭선성(崇善城, 선산읍성)’을 ‘숭신성(崇信城)’으로 오기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일부 자료와 지도에서 냉산성이 ‘숭신산성’으로 잘못 표기되면서 두 지명이 뒤섞여 사용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냉산이 태조산이 아니다’는 주장을 펼쳐 온 최종방 선생(전주최씨 인재공파 족보편찬위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토지리정보원, 구미시청, 구미문화원 등에 근거 자료를 제출해 왔다. 그는 “일부에서는 냉산 위 성터를 ‘숭신산성’으로, 옻창고(漆倉칠창)를 ‘일곱 개 창고(七倉칠창)’로 변형하는 등 근거 없는 해석을 덧붙여 명칭 변경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냉산 인근 나루를 ‘여지나루’라고 불러 왔고, ‘왕건의 나루(余津여진)’라는 명칭은 실제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 선생은 또 “2023년 9월, 국토지리정보원에 지도에 표기된 ‘숭신산성’의 근거를 질의했으나 2년이 지나도록 답변을 받지 못했다. 결국 지난 11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문제를 공식 제기했고, 9일 뒤인 20일 국토지리정보원의 현장 조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이날 현장 조사를 통해 1999년부터 지도에 잘못 표기돼 온 ‘숭신산성’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냉산이 태조산이 아니라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리게 됐다.
김광수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도리사가 일주문 편액에 태조산이라고 표기하면서 대중적으로 냉산이 태조산이라고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치, 지명, 역사적 기록, 구술 자료를 종합하면 냉산과 태조산은 서로 다른 산이다”며 “역사 왜곡 없이 올바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잘못된 명칭 사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논쟁은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구미지역 역사와 문화유산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도 중요한 사안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