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이자 입하(立夏)다. ‘입하’ 하면 떠오르는 나무가 있다. 바로 ‘이팝’나무다. ‘이팝’의 어원을 흰쌀밥이라는 뜻의 ‘이밥’에서 찾지만, ‘입하(立夏)’에서 유래된 것이란 설도 있다. 이 무렵에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많은 거리의 가로수로서 지금 이 나무는 마치 울릉도의 후박나무에 눈이 내린 듯 흰색(꽃)과 녹색(잎)의 대비로 자신의 시대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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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린재나무꽃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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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발맞추어 산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미지의 나무가 조용한 자태를 선보이고 있다. 그것은 노린재나무꽃이다. 노린재나무라는 이름은 ‘노란 재’에서 온 말이다. 옷감에 물을 들일 때 물이 잘 들도록 도와주는 매개 물질을 매염제라고 한다. 옛날에는 지치 뿌리나 치자 열매 등으로 물을 들일 때 매염재로 사용하던 것이 바로 노린재 나무를 태워서 얻은 잿물이었다. 이 잿물을 ‘황회(黃灰)’라고 하며 색깔이 약간 누런 빛이라서 ‘노란재나무’라고 하던 것이 변해서 ‘노린재나무’가 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니까 이 나무가 옛날에는 염색용 매염제로 요긴하게 쓰였지만, 지금은 명반이나 타닌 등의 좋은 매염제를 개발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그 쓸모를 잃게 되고 말았다.
이 나무 꽃을 찾아 기자는 이른 점심을 먹고 차를 몰아 금오산 형곡전망대로 달렸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지금 도로로 끊어진 양쪽 산을 다리로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반겨 주듯 거북의 입에서 샘물을 쏘아 주는 ‘남티정’에서 한 바가지의 물로 목을 축인다. 금오산상가 방향으로 잠시 내려가다 왼쪽 산기슭에 있는 ‘산불 조심 경고문’ 간판 옆의 입구로 들어서서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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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물샘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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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15분쯤 걸으면 법성사(法城寺)에서 올라오는 계곡길과 만난다. 이내 계곡을 건너 맞은 산으로 오르면 ‘찬물샘’에 이른다. 수도꼭지 시설이 없이 땅속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그대로 떠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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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수나무 꽃망울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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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으로 백록색의 좁쌀 같은 국수나무 꽃망울을 자주 보며, 비목나무잎과 잎 넓은 쪽동백나무 등을 스친다.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아서 ‘숲속의 숨은 가수’라 불려지는 되지빠귀의 맑고 투명한 노랫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준다. 이동 중인 이 새의 모습을 드물게 보게 되면 가슴과 옆구리에 선명한 오렌지색이 매력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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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수령 안내 이정표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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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 정도 비교적 완만한 산길을 더 오르면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도수령’으로 가기 위해서 왼쪽 방향으로 계곡을 건너 돌길을 걷는다. 잠시 후 계곡이 끝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밧줄을 타고 오르면 넓은 길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길 좌우로 노린재나무 군락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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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린재나무꽃의 생김새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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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금오산 ‘도수령’ 바로 아래 부근은 이 나무의 작은 군락지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언뜻 보면 산에서 보는 이팝나무꽃 이미지로 다가온다. 나무 전체가 백설로 덮인 듯이 하얗다. 수많은 수술이 꽃잎보다 길게 뻗어 나와 마치 나무 전체가 하얀 솜털이나 안개에 싸인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나무의 수형은 하나의 줄기가 곧게 올라와 많은 가지를 내어 우산 모양을 이루며, 작은 가지에는 털이 있다. 줄기의 색은 감나무를 닮았다. 열매는 9월경에 청색에 윤기를 더한 보랏빛(벽자색)으로 익어간다. 사파이어를 깎아 만든 듯한 그 열매는 산새들의 눈동자를 닮았다. 가로수의 이팝나무가 묵직한 검은 진주 같은 열매로 품격을 더한다면, 노린재나무는 가을 하늘의 정수만을 뽑아 적신 듯 시린 쪽빛 열매를 매달아 등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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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수령 쉼터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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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청백(靑白) 향연을 흐뭇하게 사진기에 담으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양쪽 산 사이의 안부(鞍部) 지점에 ‘도수령 쉼터’라는 정자가 기다리고 있다. 맞은 편 아래로 칠곡 승오리로 가는 임도(林道)가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효자봉, 서쪽으로는 금오산 정상 가는 길의 분기점이다. 정자 안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물을 마시며, 형곡전망대로 원점 회귀를 위해 하산을 준비한다.
우리에게 쌀밥 이미지로 익숙한 이팝나무가 도심의 봄을 책임지는 '공적인 아름다움'이라면, 노린재나무는 숲속 깊은 곳에서 아는 이에게만 그 자태를 허락하는 '사적인 신비로움'이다. '도심의 사촌'과 '숲의 은둔자'를 입하(立夏) 무렵에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또 감사한 일이라 여기며 산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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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나무를 닮은 노린재나무의 줄기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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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되지빠귀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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