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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사찰⑥] 김천 남면 오봉리 갈항사지

1200여 년 전 갈항마을, 신라 왕실 사람들이 드나들었다는데...
안정분 기자 / 입력 : 2020년 03월 26일
구미·선산 지역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자리한 곳으로 일찍부터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 주목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지역에는 크고 작은 절터와 석탑, 불상, 석등 등 통일신라는 물론이고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많은 불교유적과 유물을 볼 수 있다. 한 지역에서 이렇듯 조밀한 불교유적의 분포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드문 경우다.
본지에서는 구미·선산 불교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역사를 간직한,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사찰을 둘러본다. <편집자주>
ⓒ 경북문화신문

금오산 약사암을 산내 암자로 거느린 대찰 갈항사(葛項寺)는 신라 불교조각의 황금기인 경덕왕 17년(758)에 원성왕(재위기간 785-798) 외가에 의해 중창됐다. 특히 갈항사의 동서 삼층석탑에는 건립연대와 건립주체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역사학과 금석학 분야에서 활용됐고 탑명에 보이는 이두문자는 이두관련 어문학 분야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1200여년전 신라 왕실 사람들이 이곳 금오산자락, 후미진 김천 갈항마을에 드나들었다니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 갈항사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 동서 삼층석탑 표지석
ⓒ 경북문화신문

갈항마을 사찰 이름에서 유래
코로나 감염증 확산으로 인해 비교적 한가한 틈을 타서 갈항사지를 찾았다. 구미에서 김천으로 가는 지방도로에서 남면 오봉지를 지나 길을 따라가면 갈항마을이 나온다. 예전에 이곳에는 칡이 많아 칡 갈(葛)자를 써서 '갈항사'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마을 이름은 갈항사라는 사찰이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경운기 한 대가 겨우 지날 길을 따라 굽이굽이 오르면 산자락 왼편에 작은 전각이 눈에 들어온다. 전각 맞은 밭 중앙쯤에는 동, 서로 나뉘어 표지석이 감나무들 사이에 각각 서있다. 표지석 위쪽에는 석불좌상이 위치해 있으며 주변 곳곳에는 주춧돌이며 기와조각들이 산재해 있다. 또 전각 위의 언덕에는 ‘갈항사’라는 이름을 달고 개인이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누가 이곳에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표지판이 있기는 하지만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찾기 힘들 정도다.

의상의 제자 승전이 창건
갈항사는 신라시대 승려 승전이 상주령내 개령군 경계(현. 경북 김천시 남편 오봉리)에 건립한 사찰이다. 창건자인 승전대사는 삼국유사 의해편에 독립적으로 다뤄질 만큼 신라 불교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승려 14명 중 한명으로 평가될 만한 주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승전은 의상대사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인데 일찍이 중국(당나라)에 건너가 중국 화엄종의 제2대조이자 의상과 동문(同門)인 법장대사의 문하에서 화엄을 배웠다. 692년(효소왕 1년)에 법장스님에게 보내는 서신을 갖고 돌아온 스님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삼국유사』기록을 보면 승전이 귀국한 후 700년 전후 쯤 갈항사를 창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 돌해골(石觸髏) 80점을 놓고 화엄을 강론할 만큼 시세가 미약했고 그를 따르는 신도들도 없었다고 한다. 돌이 지금도 전하는데 영험한 이적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 동탑 표지석
ⓒ 경북문화신문
↑↑ 1916년 이전 촬영된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북문화신문

갈항사지 동서삼층석탑 명문 남아 있어
갈항사는 이후 50여년을 지나 크게 중창됐다. 이는 3층 동서석탑을 758년 경덕왕 17년에 조성한 사실에서 입증되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동탑의 이층 기단 면석에 이같이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에는 갈항사의 두 석탑은 경신대왕의 외가의 시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경신대왕의 외숙인 언적법사와 그의 어머니인 계오부인 박씨(소문황태후), 그의 이모로 생각되는 아래 누이 등 세 남매가 경덕왕 17년에 조성한 것이다. 언적법사가 갈항사의 주지로 있었기 때문인지, 그들 박씨가문의 연고지가 이 지역이었기 때문인지 갈항사는 경신대왕의 외가인 박씨가문의 원찰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박씨가문은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한 후인 785년 이후에 석탑에다 명문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경신대왕이니 소문황태후 등은 경신이 원성왕이 된 후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석탑의 조성과 갈항사의 중창이 있고 난 후 약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현재 절터에 표지석만 덩그러니 서 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갈항사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중기까지 사찰이 유지됐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의 자료에 따르면 1799년 무렵에는 이미 폐사(廢寺)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寺址에 남은 두 석탑(국보 제99호)은 1916년 2월 12일 도굴범들에 의해 도괴된 후 그해 6월에 경북궁으로 옮겨졌다.
↑↑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245호)
ⓒ 경북문화신문

석굴암 본존불상과 흡사한 석조석가여래좌상
표지석 맞은편에 있는, 현판도 붙지 않은 보호각 문을 열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자리하고 있다. 보물 245호 이 석불상은 당시 석탑과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반달모양의 눈썹, 두툼한 눈두덩이, 삼각형 모양의 아담한 코와 작은 입은 전체적으로 온화하면서도 예쁜 모습이다. 또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느낄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묻어나기도 한다. 특히 얼굴에 비해서 백호 구멍은 유난히 큰 편인데 아마도 수정 같은 보석으로 백호를 만들었다면 얼굴의 포인트를 바로 여기에 두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체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법의의 부드러운 곡선은 천년의 세월을 무색케 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당대의 불상인 석굴암의 본존불만큼이나 우아한 자태다. 석굴암은 일제에 의해 변모됐지만 이 석불상은 당시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불상은 무릎부분이 깨어졌는데 오른손의 손가락들과 왼손이 엄지손가락부분까지 잘려 나갔을 뿐 거의 완전한 모습이다. 불상 주변을 몇 바퀴를 돌았을까. 어디서 이런 불상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둘러볼 수 있을까. 흡족했다.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석가여래좌상은 일제강점기 초까지 두상만 노출된 채 땅속에 묻혀 있다가 마을 주민들이 발굴해 초가집을 지어 모셔오다 1978년에야 지금의 보호각을 세웠다.
↑↑ 외부에 방치된 비로나자불상
ⓒ 경북문화신문

제 얼굴 잃은 석불상 절터 지키고 있어
석탑 표지석 위쪽에는 또 다른 불상이 금오산을 등지고 철창 속에 갇혀 김천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처의 진신으로 세상의 진리를 밝힌다는 비로자나불상이다. 제 얼굴을 잃고 새얼굴을 하고 있는 불상은 한창 잘 나가던 전성기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밭으로 변한 절터를 지키고 있다. 언뜻 보아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보호 장치 없이 비바람을 견뎌온 모습 그대로 몸이 닿고 곳곳에 상처를 드러내고 있지만 당당하다. 
↑↑ 우물
ⓒ 경북문화신문
↑↑ 우물
ⓒ 경북문화신문

이외에도 절터 입구에 들어서는 길 왼쪽 밭둑 아래에 우물이 하나 있다. 우물은 두 번째 방문을 통해 이 우물을 발견했을 정도로 그냥 지나치기 쉽다. 언제 만들어지고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전하는 기록이 없지만 돌을 쌓아올린 모습은 제법 그럴듯하다. 바닥까지4~5m정도 되는 높이의 우물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마을 입구에 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골짜기에는 물이 넉넉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삼국유사』,『신증동국여지승람』,
문명대(김천 갈항사 석불좌상의 고찰, 1984),
주보돈(삼국유사 승전촉루조의 음미,2013) 등


안정분 기자 / 입력 : 2020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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