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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 전면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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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인 구미 금오서원의 정학당과 상현묘가 지난해 12월 28일자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2102호, 보물 2103호로 각각 승격됐다.
금오서원은 길재를 포함해 선산부와 연고가 있는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이 배향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서원(書院)은 조선시대 향촌에 근거지를 둔 사림(士林)이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사립교육기관으로, 선현에 대한 제자와 학문 연구, 학학 양성을 담당했다.
금오서원의 처음 위치는 길재가 노년을 보냈던 금오산이다. 선조 3년(1570)에 금오산 자락에 창건, 선조 8년(1575)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됐으나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된 후 선조 35년(1602)에 현재의 위치에 재건됐다. 재건 이후 현재까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서원 경내에는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현묘를 비롯해 정학당, 동재와 서재, 읍청루 등 제향공간, 강학공간, 부속공간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전학후묘(앞쪽에 학업용 건물, 뒤쪽에 묘당) 배치의 서원이다. 특히 읍청루-정학당-상현묘로 이어지는 일직선상의 중심축은 자연지형의 고저차를 이용해 공간의 위계성을 표현하고 있고, 다시 각각의 영역은 담장으로 구획돼 공간의 독립성을 나타내고 잇는 등 조선중기 서원 배치의 전형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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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 내부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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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의 정학당은 강당으로 가구구성, 창틀구성에서 고식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온돌방 부분까지도 원기둥을 사용하고 부재의 규격을 크게 했다. 장식을 배재해 엄격한 느낌을 주며 여기에 지붕가구 세부와 공포 형식(한국·일본·중국 등지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에서 절제미 등 미학적인 건축양식과 조형미가 돋보인다. 이처럼 건축적으로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며 임란직후 창건된 조선 후기의 강당건축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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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 금오서원 상현묘 전경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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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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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의 상현묘는 사당으로 창호의 치목 기법, 살미의 형태나 대공의 모습 등을 볼 때 조선 중기 건축구조와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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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서원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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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화재청의 건조물문호재 보물지정 확대 추진에 따라 전국 20곳의 서원·향교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신규지정됐고 그 중 경북에는 8곳이 보물로 승격됐다. 보물로 승격된 곳은 구미 금오서원의 정학당과 상현묘를 포함해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 △경주향교 명륜당 △경주향교 동무·서무·신삼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