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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수 한학자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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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라.”라고 하였고, 《예기》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라.[詩曰 夙興夜寐 禮曰 冬溫夏凊]”라고 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겨울에는 언제나 방과 옷이 따뜻한지 여름에는 시원한지를 살피라는 말이다.
夙(일찍 숙)자는 夕(저녁 석)과 丮(잡을 극)이 합쳐진 글자이다. 하늘에 해가 떠오르기 전 달이 아직 지지 않은 이른 시간 손에 뭔가를 쥐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본떴다. 지금은 마치 几(안석 궤)와 一(한 일)이 합쳐지거나 几와 歹(뼈 알)이 합쳐진 글자처럼 보이지만 갑골문에서 명확하게 확인되는 글자이다.
興(일어날 흥)자는 舁(마주들 여)자와 同(함께 동)자가 합쳐진 글자로 함께 뭔가를 마주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함께 일을 일으키는 상황을 말한다. 舁를 구성하고 있는 臼[‘절구 구’자가 아님]와 廾(두 손 맞잡을 공)자는 둘 다 양쪽 손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두 사람이 양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다.
同은 뚜껑[凡]을 아래 그릇[口]에 덮어 하나가 된다는 뜻에서 같다’는 뜻이 만들어졌다. 與(함께 여)자와 모양이 아주 흡사하니 눈여겨 구별해야 할 글자이다.
溫(따뜻할 온)은 따뜻한 물[氵 물 수]를 그릇[皿 그릇 명]에 담고 그 통속에 사람이 들어가[囚 가둘 수] 목욕하는 모습을 본떴다. 모든 문자는 평면에 기록하는 것으로 입체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마치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보이는 면만 표현하던 기법에서 보이지 않는 다른 면까지 한 면에 동시에 표현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목욕통 속에 들어 있는 사람[囚]을 바라보는 위쪽의 시각과 옆에서 보이는 목욕통[皿]을 한 면에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凊(서늘할 청)은 얼음의 모양을 본뜬 冫(얼음 빙)과 靑(맑을 청)이 합쳐진 글자이다. 靑의 아래쪽을 구성하고 있는 글자가 마치 丹(붉을 단)자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井(우물 정)자가 변한 모습이다. 나머지는 우물의 주위는 언제나 축축하여 푸른 이끼가 자란다[生 자랄 생]. 여기서 ‘푸르다’라는 뜻을 가져왔다.
공자의 제자 중에 맹무백이라는 사람이 하루는 공자에게 효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만을 걱정하신다.”라고 대답하였다. 질문과 대답이 엇갈린 것처럼 보이지만, 부모는 자식이 제 몸 하나 잘 간수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효도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이었다.

종교는 형이상학적인 특성이 많습니다. 후세인들이 형이상학적.초월적 유교의 특성을 모르면서, 즉문즉답의 어구하나에서 무언가 단도직입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요소들도 많습니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맹무백이 효를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하신다.[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공자님의 가름침은 孝에 대한것뿐 아니라 하느님, 神明, 조상숭배, 요.순.우.탕.문.무.주공의 성인을 통한 가르침, 禮와 道에 대한 가르침등 아주 많습니다. 성인이나 스승의 말씀은, 후학들이 체험하지 못한 많은것들을 깨우치는 체험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부모는 항상 자식의 병을 가장 걱정하시므로,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십니다. 또한 부모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도록 공격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온게 유교 전통입니다.

08/02 11:09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