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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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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한파 특보가 내려진 10월의 어느 일요일 오전, 일기예보와 달리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청명(淸明)하다’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 식물도 살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과 가을 햇살은 식물도 좋아할 거라는 믿음으로 사무실 안의 식물들을 밖으로 내놓았다. 가능하면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면서 조심조심.
얼마 전 식물세물화가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다. 식물은 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자신에게 위험한 접촉과 그렇지 않은 접촉을 구별할 수 없단다. 즉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치지 않을 마음으로 만지더라도 식물에게는 전혀 좋을 게 없다는 것. 물론 이 같은 추측에는 식물은 촉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잎에 들어오는 곤충을 통해 양분을 섭취하는 파리지옥은 잎을 만지기만 해도 곤충이 들어왔다고 착각해 잎을 닫아버린다. 누군가 잎에 손을 갖다 대면 잎을 빠르게 오므리고 몇 분 후 다시 제 상태로 돌아가는 미모사도 사실은 위험인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란다. 미모사의 영어 이름이 ‘터치 미 낫’. 이름조차 ‘나를 만지지 마세요’라니 직접적인 접촉을 원치 않는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동안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 중 하나로만 생각했다. 물을 너무 많이 주어 뿌리를 썩게 하고, 해를 쬐인다고 잎이 타들어가도록 하고...어리석은 내가 식물들에게 저지른 죄들을 하나씩 깨닫는 순간, 나의 돌봄에 따라 식물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사무실에 식물 하나를 들여놓고 나니 어느새 입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출근을 하면 물을 주거나 시든 잎을 정리하는 것으로 업무가 시작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한 관심만 일정하게 유지해주면 늘 싱싱한 새잎과 꽃을 내어준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다. 그동안 애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한갓 나의 욕심이었음을.
애정이라 생각했던 것이 욕심일 수 있다는 말이 인상깊게 다가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11/10 23:41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