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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규동 문화해설사의 구미이야기(8)]낙동강 뱃길 이야기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06일
↑↑ 여규동 구미시관광문화해설사
ⓒ 경북문화신문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의 매봉산 천의봉 너덜샘에서 발원하여 황지연못에서 용출된 후 구미시를 거쳐, 경남 창녕군과 부산광역시를 지나 남해로 흘러든다. 길이는 510km이고, 유역면적은 23,384㎢이다.
낙동강이란 이름이 처음 쓰인 것은 동국여지승람이지만 이보다 훨씬 이전인 삼국 시대에 김해 일대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가락국의 황산나루 땅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에서 황산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낙동(洛東)이라는 이름의 뜻은 낙양 동쪽에 흐르는 강이란 의미이다. 낙양은 지금의 상주를 말한다.
인재(訒齋) 최현(崔晛)선생의 일선지에는 삼척부(三陟府) 황지(潢池)에서 발원하여 부(府)의 북쪽 비봉산 뒤로 흘러들어 온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1980년 학계에서는 현지답사를 통하여 금대봉 남쪽에 있는 너덜샘을 발원지로 공인하였다.

나루는 강을 건너다니는 곳이다. 옛날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강을 만나면 배로 건너야 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목이 있기 마련이고, 거기가 나루터가 되기 마련이다. 나루터는 삶의 현장이 되고, 맛난 음식과 주막이 있어 로맨스가 있고, 무엇보다도 돈이 있었다. 선산읍 원리 강창나루, 고아읍과 해평면을 잇는 강정나루, 비산동 비산나루는 구미지역 3대 나루라고 할 수 있다.

낙동나루는 예로부터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다. 배로 실어 온 낙동강 하류의 물자를 여기서 수레에 옮겨 싣고 문경새재를 넘어 중부 내륙으로 운송했다. 서울로 왕래하는 영남 지방 사람들 역시 반드시 거쳐 가는 길목이었다.
그 길목에는 영남사림파의 영수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고단한 민초들의 아픔을 어루만진 흔적이 있다. 당시의 지식인으로서 간과하지 못할 양심이었으리라! 이른바 '낙동요(洛東謠)라 제목하고 그 현판을 관수루에 걸게 된다. 의성과 상주의 길목인 낙정나루에 자리하고 밀양의 영남루, 안동의 영호루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정자로 이름하는 관수루에서 당시 권신들의 잔치를 목격하고 자신도 선비임에 양심을 토로했다.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당시의 상황을 묵과(默過)하지 못한 듯하다.

황지의 원천은 겨우 잔에 넘칠 정도인데(黃池之源纔濫觴·황지지원재남상)/여기까지 흘러와선 어찌 이리 넓어졌나(奔流倒此何湯湯·분류도차하탕탕)~~남쪽 백성들 가렴주구 어이 견디랴(南民何以堪誅求·남민하이감주구)/쌀독은 비고 도토리마저 떨어졌는데(缾甖已罄橡栗空·병앵이경상률공)/강가에선 풍악 울리며 살진소를 잡네(江干歌吹椎肥牛·강간가취추비우)/조정의 사자는 유성같이 지나치니(皇華使者如流星·황화사자여유성)/길가 해골에게 누가 이름이나 묻겠는가(道傍觸髏誰問名·도방촉루수문명).

이 시(詩)를 일러서 조선 중기 문장가 상촌 신흠 선생은 ‘당대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압구정 한명회와 교우한 사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허균조차도 그의 시를 높이 평가 했다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를 따르다 보면 선산 원리의 강창(江倉)나루에 닿는다. 강창은 선산부의 하운창(河運倉)으로, 강변 지역의 여러 사창(社倉), 염창(鹽倉)역 등이 물류기지의 역할을 했으며, 또 선산부의 관문에 월파정을 지어 사신들을 직접 영접한 여진(여차니진)이 있다. 여차니진은 고려 태조 왕건이 936년 선산읍 생곡리 앞 지금의 일선교 근처 태조방천으로 불리는 낙동강 연안에서 견훤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싸움에서 크게 이겼던 곳이다.

강정나루는 여진나루의 하류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에 보천탄(寶泉灘)이라 불리기도 했다. 지금의 매학정 주위 근처로 추정된다. 점필재 김종직은 이 나루를 선산의 10경 중 하나로 꼽아 시를 읊기도 했다.
매학정(梅鶴亭) 남쪽 숭선교 인근 강정나루터인 이 나루는 옛날 과거길, 소금배의 경유지부터 농사용 뱃길, 장 보러 가는 길까지 물류와 교통의 주요 길목이었다.

비산(飛山)의 원래 이름은 비산(緋山)이었다고 전해진다. 지역의 흙이 붉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일제 시절 비산(飛山)으로 개칭됐다고 한다. 그래서 갈뫼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시 갈뫼시장이 있어 소금배가 오는 날이면 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각종 어물과 소금, 생필품 등이 이 시장을 통하여 유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근 칠곡·김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품들과 물물교역 형태로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장터거리에는 호객하는 사람, 술꾼들의 잡음으로 떠들썩하였을 것이다. 또 비산에는 향교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본시 1읍(邑)1교(校)이라 독립된 현(縣)인지는 고증할 수가 없다.
비산이란 동네는 지금은 공단동을 합쳐서 그 이름을 다시 비산(飛山)으로 하였다. 아쉬운 것은 이번 기회에 본래의 비산(緋山) 붉은 비단의 산, 갈뫼의 이름을 되찾길 희망하였으나 무슨 이유인지 그대로의 비산(飛山)을 사용하는 아쉬움이 있다. 산이 날아가면 어찌 되겠는가? 날뫼가 될 것이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조선시대 공부제도가 현물에서 금납제로 바뀌고,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나루의 역할은 점점 좁혀져 갔다. 이렇듯 이번 힌남노 태풍에서도 경험하였듯이 구미는 금오산의 줄기에 기대어 낙동강에 젖을 먹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도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나룻배 전망대에서는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으며, 나룻배 전망대 안에는 옛 전통 나루 문화의 활용, 전국의 나루터 및 인근 명소, 옛 나루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콘텐츠의 빈약으로 흥미를 주지 못하며,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어차피 낙동강 둔치에 조성했다면 하류쪽 유효지를 활용하여 동락서원과 나루터로 연결해서 이계천에 용비교(龍飛橋 )같은 다리를 하나 놓고 진평동의 구미과학관과 연계해서 벨트화한다면 구미지역의 관광자원에 한 축이 되리라 생각해본다. 구미의 자연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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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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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구미시의 주인은 구미시민입니다. 시민의 주머니에서 구미시 예산이 나옵니다. 그 예산이 눈 먼 돈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형식적인 관리, 감독 기능이 여러 문제를 양산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명분만 잘 세우면 기구와 조직을 만들어 치적이라는 깃발을 올리고, 이해관계인들은 예산에 빨대(파이프라인)를 꽂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 왔기에, 또 그렇게 해야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구미시 예산은 시민들을 위해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쓰여져야 합니다. 내실도 없는 명분과 조직에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예산은 당연히 규모의 경제이기도 합니다. 규모에 따른 최적의 효율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역의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발전 계획과 이에 따른 효율성이 담보된 예산의 세밀한 배분과 집행.. 그리고 무엇보다 철저한 관리, 감독 시스템으로 객관적인 평가와 피드백으로 이어가는 구미시의 냉철한 의지와 실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빨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단체나 조직을 특정 지어 말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예산 운용에 관한 우려의 소견입니다.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 현실을 보자. 시립이 시립 다와야 존재성도 필요성도 인정 받을 수 있다. 기존의 시립 단체부터 제대로 재정립이 되어야 한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옛 표어~ 지금은 하나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자식만 놓자는 얘기인지...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기초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시립의 본 모습이 뭔지,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길 시민으로 바라고 있다.
진심이 느껴집니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당당하게 당선되길 바랍니다.
이달 26일까지 출입 전면 금지입니다.
지산샛강공원은 겨울 내내 접근금지 일까요? 고니는 왔던데 가까이서 볼수가 없더군요ㅠ.ㅠ
강의하는 이태현 선수 덩치에 안맞게 귀엽다요ㅎ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작년 한해 문화의 담론이 생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태생이 불분명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른바 '문화도시추진단'은 구미의 문화를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저는 장님이 만지는 코끼리를 계속 떠올렸습니다. 서로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중력의 작용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말입니다. 생계를 위한 보조 사업, 도시재생 사업, 단체 과시 행사 등 익숙한 문화적 행위들만 나열될 때 시민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경은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화사업이나 행사가 구미의 문화를 위해 배제될 요소는 아닙니다만, 구미의 문화는 이들의 합을 넘어서는 지점이 되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시민들의 문화창조 행위는 발디딜 틈이 없어지고, 보고서 작성에 급급한 지자체의 협소한 시각은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 셈이지요. 지금부터라도 담당 부서 혹은 중간 조직은 문화를 보는 시각을 갖추어야 하리라 봅니다. 시민들의 취미, 학습, 생업을 망라하고 농촌-도시, 계층, 소수자 등을 묶는 문화 밸트에 착안해서 그야말로 시민들의 삶을 문화로 엮어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역 예술인의 아픔이 선홍빛처럼 묻어나는 글입니다. 문화라는 껍데기 가면을 쓴 장사치들의 이권 투전이 지역 문화예술의 현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여기에 지역 예술인들마저 물들어가거나 그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외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이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너무 아쉽네요. 이 기사를 놓쳤군요ㅠ.ㅠ
평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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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주석에 “도를 지키지 못하여 밖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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