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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규동의 문화해설사의 구미야기(9)]해동 최초 가람 태조산 `도리사`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18일
↑↑ 여규동 구미시관광문화해설사
ⓒ 경북문화신문
낙동강 물줄기를 거슬러 금오산을 좌로 놓고 냉산자락으로 스며들면 동국 최초 가람 천년고찰 도리사(桃李寺)를 만난다. 일주문을 지나면 사시사철 아름다움과 그늘을 만들어 불자들을 맞이하는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어 도리사를 찾는 이들을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안아주는 느낌을 준다. 굴곡진 도로를 한참이나 오르면 마침내 아름드리 노송들이 내려보며 주차장을 내어준다.

때는 신라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화상이 세운 신라 최초의 절이다(417년).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 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곳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좋은 터임을 알고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이름하여 도리사(桃李寺)라 하였다.

천년의 고찰인데도 건축물이 여느 절에 비해 단촐함은 수많은 병화를 통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1729년(영조 5) 대인(大仁)이 아미타불상을 개금(改金)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금당암을 도리사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오래된 사찰을 한 편의 글로 소개하는 일이 무척 어려움을 느낀다. 인터넷에도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나 현장에서 방문객들이 궁금해하는 사항들을 안내소에서부터 설명하는 게 가장 쉽게 이해할 듯하여 차례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일주문(一柱門)은 기둥이 한 줄로 서 있는 문이라는 뜻으로,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기도 하다. 극락전에서 4.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일주문은 1993년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로 도리사에서는 산문(山門)이라고도 칭한다. 이유는 아마도 사바세계와 극락세계를 구분하는 곳이 이 문(門)인데 그 문안에 각종 위락시설이 산재해 있는 것이 이유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면에는 예천의 서예가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선생이 광개토대왕비체로 쓴 “동국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東國最初伽藍聖地太祖山桃李寺)라는 편액이 걸려 방문객을 맞이한다.

적멸보궁(부처님 진신사리가 안치된 곳)이란 하거비(下車碑)가 있어 모든 방문객들은 예(禮)를 갖추어야 한다. 도리사에 첫 손님을 맞이하는 곳에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戒道)란 큰 도장 같은 석조물(石造物)이 서 있다. 신라 의상 스님이 화엄사상의 요지를 7言(언) 30句(구) 210字(자)의 간결한 詩句(시구)로 축약한 글로 54角(각)이 있는 사각도인(印)에 그려 놓아 법회에서 해인도(海印圖에) 따라 돌면 제자리로 돌아오고 또 계속 돌게 된다. 법계도의 게송은 중앙에서 '法(법)'자로 시작해서 다시 중앙에서 '佛(불)'자로 맺고 있다. 게송을 "法性偈(법성게)"라 한다.

단풍나무가 산들거리는 길을 따라 들면 활주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극락전(極樂殿)이 보인다.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인 팔작지붕 건물로, 1875년(고종 12) 용해(龍海)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70년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공포 구성양식과 유사하여 조선 말기의 건축특징을 엿볼 수 있다. 내부에는 1645년에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1876년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을 봉안하고 있으며, 근래에 지장탱과 신중탱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또한 이 건물에는 흙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 목재로만 건축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극락전 앞뜰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인 화엄석탑(華嚴石塔)이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5개 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층은 탑을 받치는 기단으로, 기단 위의 2개 층은 중심부분인 탑신부로 여겨진다. 탑신부의 1층과 2층은 작은 정사각형의 돌을 2∼3단으로 쌓아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는데, 각각 한 면에 문틀을 돋을새김한 널돌을 끼워 문짝 모양을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위쪽의 2개 층은 머리장식 받침인 노반(露盤)이고 맨 위의 노반 위에는 연꽃이 조각된 보주를 얹어놓았다.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동일한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이 화엄석탑은 현재 보물 제4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의 전탑을 닮아 모전석탑(模塼石塔) 이라고도 명한다.

또 극락전 서편 마당에는 직지사 말사 즉 제8교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조형물이 있다. 이른바 포대화상이다. 화상은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신으로 당나라 말기부터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름은 계차(契此)이며, 항상 커다란 포대자루를 들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화상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 화상의 배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모두 이루어진다는 믿음 때문인지 배 둘레에 손때 자국이 선명한 곳이 많다. 어린이를 좋아해서 동자를 안고 극락전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 보살님이 입혔는지 주홍색 옷을 예쁘게 입혀 놓아 오가는 이의 주목을 끈다. 마치 절의 인심을 대변하는 듯하여 마음까지도 포근해진다.

극락전을 지나 담 밖 비탈진 송림을 내려서면 나란히 남향하여 서 있는 두 비석 아도화상사적비(阿道和尙事蹟碑)와 불량답시주질비(佛糧畓施主秩碑)가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이 비(碑)는 1655년(효종 6)에 세운 것으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사적(事績)을 적은 것이며, 뒷면에는 자운비가 음각되어 있고 비석의 모습은 자연석을 받침 삼아 그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앞면에 이무기를, 뒷면에 네 마리의 용을 조각하고, 그 사이마다 다시 운룡을 조각한 독특한 모양이다.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논밭을 시주한 이의 이름과 논밭 규모를 적어놓은 비석이며 1712(숙종38)에 세워졌다. 모습은 아도화상사적비와 같으나 머릿돌 앞뒷면에 굵은 선으로 연꽃봉오리와 줄기를 조각하고, 양 옆면에는 이중으로 된 원 모양의 띠를 새겨 장식하였다. 앞쪽으로는 아도화상께서 참선을 하셨던 좌선대가 자리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도리사의 기(氣)를 느낀다는 사람도 있어 관람객들이 호기심을 가진다.

가쁜 숨을 들이쉬며 다시 극락전 마당 동편을 돌아들면 큰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체인 염화실(拈花室)이 보인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ㄱ자형 건물이다. 석가모니가 꽃을 들고 가섭이 미소를 지었다는 내용에 기초한 화두(話頭) 염화미소(拈花微笑)에서 따온 것이다.

극락전 뒤편에는 삼성각(三聖閣) 자리하고 있다. 산신(山神)ㆍ독성(獨聖)ㆍ칠성(七星)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1992년에 조성한 산신탱(山神幀)ㆍ독성탱(獨聖幀)ㆍ칠성탱(七星幀)이 봉안되어 있다.

태조선원과 삼성각 사이에 있는 석종형 세존사리탑(石鍾形 世尊舍利塔)은 높이 1.3m의 석탑으로 석종형 부도(浮屠)를 닮았다. 작은 방형기단 위에 탑신과 연꽃봉오리 형태의 보주를 장식하였으며, 상층 지대석의 네 귀퉁이에는 사자의 머리를 조각하고 그 중간에 향로를 새겼다. 탑신의 위ㆍ아래에는 띠처럼 돌아가며 연꽃잎을 새겼는데, 꽃잎이 서로 겹쳐지도록 한 점이 특이하다. 보주에도 아래에 앙련을 새기고 그 위로 다섯 개의 원을 마련하여 ‘世尊舍利塔’이라는 글자를 한 자씩 새겨 넣었다. 조성연대는 16세기 말 17세기 초로 추정되며, 1977년 이 사리탑에서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육각사리함이 발견되어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그 안에 담긴 진신사리는 도리사 적멸보궁에 모셔져 있다.

저 멀리 금오산 쪽을 바라보고는 태조선원(太祖禪院)이 자리한다. 냉산을 태조산이라 명하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으로 사료된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정면 7칸, 측면 8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이다. 고려말 야은 길재선생이 공부하시고 성철(性徹) 큰스님도 이곳에서 정진하였다고 전해진다. 정면에는「太祖禪院」 이란 현판을 민족대표33인 중 한 분인 오창석 선생이 쓰신 예서체 편액이 걸려 있다.

태조선원을 마주하고 수선료(修善寮)가 자리하며 종무소로서 실질적인 도리사의 업무를 관장 하는 곳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건물이며 1990년에 건립하였고 1층은 공양간, 2층은 종무소와 요사체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에는「東國最初伽藍」ㆍ「太祖山 桃李寺」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각 선방의 방제를 사씨부인, 아굴마, 고도녕, 모래장자 로 이름하여 이 절이 아도화상과의 관계가 있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수선료를 마주하면 영가(靈駕)들을 달래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불경소리가 자주 들려오는 보은전(報恩殿)이 있다. 1층은 보은전(報恩殿)이고 2층이 설선당인 강당이다. 보은전은 평생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이곳에 봉안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명절이나 기일마다 재(齋)를 지내고 있다. 규모가 작은 절에서는 명부전(冥府殿)으로 명명하여 지장보살을 모시고 영가들의 넋을 달래기도 한다.

불교용품점을 좌로하여 도리33천을 의미하는 33계단을 밝고 올라서면 아도화상께서 정좌(靜坐)하시고 금강경 제26분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을 펴놓고 중생들을 내려보고 계신다. 부처님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내 주위에서 찾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곳 도리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자리하고 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따라서 불상을 별도로 모시지 않고, 법당의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조성하여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리게 된다. 1982년에 주지 법등(法燈) 스님이 사리 예배와 기도를 위하여 건립하였다. 법당 안에서 바라보이는 석가여래사리탑은 1977년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 1과를 봉안하기 위해 1987년에 조성한 것이다.
높이 8m로 팔각원당형부도(八角圓堂形浮屠)를 본떠서 정방형 지대석 위에 팔각의 탑신을 세웠는데, 기단에는 용을 조각하고 탑신에는 사천왕상을, 상륜부의 귀 꽃에는 여래상을 조각하는 등 전체적으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적멸보궁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의 광활하게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저 멀리 팔공산까지 조망되는 허공에 마음을 풀어 해쳐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고픈 욕심 또한 과욕이리라!
적멸보궁에서 마음을 비우고 여러 발을 내려서면 범종각(梵鍾閣)이 자리한다. 종각은 일반적으로 범종,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의 사물(四物)을 걸어놓고 의식 때마다 소리를 내어 삼계(三界)의 미물들까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전각이다. 도리사에는 범종각을 2005년에 건립하고 초입에 수막새의 천년에 미소를 배치하여 놓았다.

이제 사찰 내부는 거의 살펴보았고 안내소에서 서쪽으로 이른바 서대(西臺)라는 곳이 있다 스님들이 복잡한 마음을 좌선을 통하여 마음공부를 하는 곳이나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교수는 “구포에서 보는 낙동강은 장려(壯麗)하고 서대에서 보는 낙동강은 수려(秀麗)하다”고 했다. 이곳은 자주 찾는 이들이 많다. 이구동성으로 “속이 시원하다”, “장관이다”고 표현한다. “구름도 흘러가고 낙수도 흘러가고 우리네 인생도 따라 흘러가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자연의 조화에 그저 탄복할 뿐이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온다. 산사에 낙엽은 앞다투어 단장하기 시작하고 저 멀리 희뿌연 운무 속에 금오산이 빙그레 웃는다. 그 옛날 아도화상도 이 늦은 오후에 자연의 변화에 두고 온 고향과 저 서방정토를 오버랩하며 목탁을 두드려 금강경을 독송 하였으리라!

고구려에서 목숨을 걸고 신라에 불법을 전수한 아도화상의 흔적이 묻어있는 이곳을 불교의 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문외한(門外漢)이 글을 쓴다는 아이러니를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나 필자보다 도리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도리사를 찾을 때 필시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으로 이글을 올리니 이해해줄 것을 당부도 해본다.
이상과 같이 도리사를 소개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 고장의 문화재로서 자부심도 느끼며 천년고찰 도리사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마음에 각인되는 문화해설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게 된다.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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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동민
우리동네 문화재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도리사 갈때마다 궁금했는데
종각 입구에 있는 수막새는 무슨의미일까요?
10/27 11:25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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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 현실을 보자. 시립이 시립 다와야 존재성도 필요성도 인정 받을 수 있다. 기존의 시립 단체부터 제대로 재정립이 되어야 한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옛 표어~ 지금은 하나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자식만 놓자는 얘기인지...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기초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시립의 본 모습이 뭔지,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길 시민으로 바라고 있다.
진심이 느껴집니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당당하게 당선되길 바랍니다.
이달 26일까지 출입 전면 금지입니다.
지산샛강공원은 겨울 내내 접근금지 일까요? 고니는 왔던데 가까이서 볼수가 없더군요ㅠ.ㅠ
강의하는 이태현 선수 덩치에 안맞게 귀엽다요ㅎ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작년 한해 문화의 담론이 생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태생이 불분명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른바 '문화도시추진단'은 구미의 문화를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저는 장님이 만지는 코끼리를 계속 떠올렸습니다. 서로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중력의 작용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말입니다. 생계를 위한 보조 사업, 도시재생 사업, 단체 과시 행사 등 익숙한 문화적 행위들만 나열될 때 시민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경은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화사업이나 행사가 구미의 문화를 위해 배제될 요소는 아닙니다만, 구미의 문화는 이들의 합을 넘어서는 지점이 되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시민들의 문화창조 행위는 발디딜 틈이 없어지고, 보고서 작성에 급급한 지자체의 협소한 시각은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 셈이지요. 지금부터라도 담당 부서 혹은 중간 조직은 문화를 보는 시각을 갖추어야 하리라 봅니다. 시민들의 취미, 학습, 생업을 망라하고 농촌-도시, 계층, 소수자 등을 묶는 문화 밸트에 착안해서 그야말로 시민들의 삶을 문화로 엮어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역 예술인의 아픔이 선홍빛처럼 묻어나는 글입니다. 문화라는 껍데기 가면을 쓴 장사치들의 이권 투전이 지역 문화예술의 현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여기에 지역 예술인들마저 물들어가거나 그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외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이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너무 아쉽네요. 이 기사를 놓쳤군요ㅠ.ㅠ
평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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