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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배의 살며 생각하며(11)]즐거운 병원 길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04월 29일
이일배 금오산수필문학회 자문위원
↑↑ 이일배 수필가
ⓒ 경북문화신문
세 곳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병원이든 의원이든 날 치료하는 곳은 나에겐 다 병원이다. 견디기 쉽지 않은 요통을 얻게 되었다. 시시로 통증이 올 때는 참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의욕마저 사라지는 것 같다. 허리가 편치 않으니, 앉고 서고 걷는 일이며, 무얼 들고 내리는 일이며, 몸 굽혀 땅이라도 파고 묻고 해야 할 일 같은 것들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노화 현상 중의 하나라 하지만, 어쩌랴. 사는 날까지는 불편을 없이 하거나 줄여서 살기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척추센터가 따로 있는 큰 병원이며, 재활 치료를 잘한다는 정형외과에 해를 넘겨 가며 다녔지만, 별 효험을 보지 못했다. 통증을 겪고 있던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데 문득 어느 빌딩에 붙은 ‘통증 치료’라는 광고 막이 눈에 들어왔다. 한의원이었다.

집에 와서 전화하여 허리 통증도 치료할 수 있느냐고 하니, 내원해서 원장님과 자세한 상담을 해 보시라 했다. 간호사의 말이었지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말로 들렸다. 실낱같은 기대이라도 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다. 이튿날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약 향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원장실로 안내받았다. 진료 이력이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 의사였다. 우선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았다. 증상을 묻기에 지금도 저린 허리 부위를 먼저 짚어 보였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식습관이며 소화 정도는 어떠냐, 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등에 대해 꼼꼼히 물었다. 내가 겪고 있고, 하고 있는 대로 소상하게 말했다. 의사는 내 말을 들으면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쁘게 메모해 나갔다.
못 되어도 수십 분은 되었을 것 같다. 다른 곳의 경험에 비추어 의사가 환자와 상담을 위해 쓰던 시간과 친절 정도를 떠올리면, 그것만으로도 큰 치료를 받은 것 같았다. 한마디 한마디 말에 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배어 있는 것 같아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경과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약을 드시면서 일주일에 두 번쯤 치료를 받아 보시라 했다. 원장님의 친절한 말씀에 희망이 드는 것 같다 하고 치료대에 누웠다.

허리와 배를 따뜻하게 덮인 후에 누운 채로 발이며 다리, 복부, 머리를 주물러 맥을 짚고 침을 놓았다. 얼마간 지난 뒤 침을 다 뽑고 엎드리라 했다. 허리에 전기 치료를 하고 나서 통증 부위는 물론 허리 여러 곳 맥을 짚으며 침을 놓고 등에는 부항을 떴다. 그 손길 하나하나에 오롯한 정성이 고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손길에서 맑은 감동이 느껴져 왔다. 치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다음 치료 때에 달인 약을 주겠다 했다.

며칠 뒤에 가니 처음과 같은 치료를 하며 약침을 놓는다고 했다. 증세를 물으며 치료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상하게 들려주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올 때 묵직한 약상자를 들려주는데, 그 안에는 마치 친한 이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자상한 복약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책상에 의지하고 있는 시간이 많다 했더니 ‘30분 독서 후 5~10분 정도 가벼운 걷기 및 스트레칭을 하라.’ 하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의사는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독실한 불자였다. 깊은 불심이 환자에게 성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게 한 것도 같았다.

이후로도 치료가 계속되었지만, 그 정성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의술을 기술로만 알고 치료 기능인 역할로 만족하려는 의사가 없지 않고 보면, 의술이란 곧 인술임을 믿고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 듯 치료에 심혈을 기울이는 의사가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상에는 이렇듯 진정한 의사가 적지 않다.

외과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장기려(張起呂 1911~1995) 박사 같은 분은 자신은 이렇다 할 재산 하나 건사하는 게 없이 평생을 소외된 이웃에게 희생과 봉사의 의술을 베풀어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몸이 불편하고도 외로운 어르신들을 부모처럼 여기며 치료와 위로를 위해 온갖 친절을 다 베풀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자한 칭송을 받고 있다는 어느 시골 공중보건의 이야기도 오롯한 감동을 준다. 지금 나를 치료하고 있는 의사도 이런 미담의 주인공이 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신체에 고통을 받고 있으면 심신이 모두 약해진다. 이 약자에 대한 성심 어린 치료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다스려 주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따뜻한 손길이 그리운 약자가 되어 아픈 몸을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기 위해, 마음에 위안을 받고 그 온기를 얻기 위해 오늘도 병원을 찾아간다.

몇 번의 치료로 잘 낫지 않을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두고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겠지만, 따뜻한 손길이 있는 한, 나에게는 그립고도 즐거운 병원 길이 될 것이다. 병원 길이 즐겁다 보면 언젠가는 몸도 마음도 잘 다스려지지 않으랴. 기도 같은 걸음으로 즐겁게 병원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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