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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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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 시댁에 가면 늘 맛보던 토종밤을 이제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됐다. 밤나무 가지가 늘어져 창고의 지붕을 무너뜨리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고사를 시켰기 때문이다. 구수하고 달짝지근한 토종밤이었는데...풋밤을 특히 좋아하는 나인지라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다. 이번 추석에 시댁에 갔을 때 밤나무가 있는 뒷마당으로 가보았다. 밤나무 줄기 아래쪽 나무껍질이 5센티미터 두께의 고리모양으로 벗겨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나무를 고사시킬 수도 있구나. 신기했다. 나무껍질부분을 벗겨내면 잎에서 만들어진 양분이 아랫부분으로 공급되지 못해 결국 뿌리가 먼저 죽게 되고, 급기야 나무 전체가 고사된다는 것이 아버님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때 배운 식물의 물관과 체관을 실제로 적용시킨 느낌이다.
아버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사수록』(이기백, 사학자)에서 본 이름 없는 어느 늙은 기술자가 떠올랐다. 이기백 선생님은 가족을 수용할 수 없는 비좁은 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래의 지붕선을 연결해 방을 하나 늘렸다. 그런데 비가 오면 새로 낸 방의 지붕에서 물이 샜다고 한다. 좋은 루핑을 사다가 두 겹으로 깔고 기와를 올리는 등 처음부터 비가 새지 않도록 신경을 썼는데 비가 오면 세숫대야에 넘칠 정도로 물이 많이 샜다는 것이다. 공사를 맡았던 목수가 여러 번 손을 봐도, 미장공을 불러 시멘트를 발라 보아도, 물역가게 젊은 사람이 나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노인이 그것도 진흙과 짚을 섞은 진흙덩어리만으로 고쳤다고 한다. 진흙덩어리 여러 개를 지붕의 경사가 낮은 곳에 고여 지붕의 경사를 반대로 바꿈으로서 비가 새는 원인을 해결한 것이다. 이후 선생님은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알고 이에 대처한 늙은 기술자를 스승으로 여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는 한 기술자에 지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인자 교수(일본 도후쿠대학)의 칼럼(시사저널)을 통해 알게 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객이 최다인 히로사키 벚꽃축제도 실증적 경험이 탄생시켰다. 일본 혼슈 북쪽 끝에 있는 아오모리현에 위치한 히로사키는 인구 17만명의 작은 지방도시다. 그러나 매년 봄이면 관광객 260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이곳의 벚꽃은 유명하다. 벚나무는 가지가 잘리면 그곳으로 균이 들어가 병을 얻기 쉬워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대 히로사키 공원의 관리소장이 된 구도 나가마사씨는 사과나무 재배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방식으로 죽은 가지를 잘라냈다. 그런데 다음해 잘라낸 곳에서 새 가지가 올라오고 그 가지에 풍성한 꽃이 피었다고 한다. 참고로 히로사키는 일본 최대의 사과 생산지다.
그는 이런 우연한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사과농장을 다니면서 연구하고 사과나무 관리와 비슷한 방법으로 죽어가는 벚나무를 살려냈다. 히로사키 공원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135년 된 벚나무가 있는가 하면, 보통 수명 60년을 훌쩍 넘긴 100년 이상된 나무가 400그루나 있다고 한다. 처음에 구도씨의 벚나무 관리법은 권위 있는 식물학자이자 히로사키대 교수인 이시카와 시게오 교수로부터 기본이 안된 관리법으로 비판을 받으면서 10년 후에 공원의 벚나무가 모두 시들어버릴 거라는 파문(1973년)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시들어버릴 거라 했던 벚나무는 해를 거듭할수록 풍성한 꽃을 맺게 돼 전국에 알려지게 됐다. 아마추어의 실증적 경험이 소위 전문가라는 학자의 지식보다 강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구미시가 처음으로 개방형 직위공모를 통해 경제기획국장을 임명했다. 침체일로에 빠진 구미경제를 위해 외부 경제전문가를 영입한 것이다. 그동안 경제기획국장 개방형 직위 도입을 두고 구미시의회와 구미시청공무원노조 등의 반발에 부딪혀 논란되기도 했다. 인사발령 1주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기업투자유치 등 경제 분야 외에 기획·예산 등 행정적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내부의 조직과 겉돌지 않고 제대로 융합할 수 있을지 등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 이론만 아는 전문가가 아니길 바란다. 실증적 경험과 전문성을 토대로 구미의 경제현안인 구미 스마트산단 조성, 상생형 구미 일자리사업,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과 관련한 미래 먹거리 사업 등에서 제 역할을 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