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기자·테스크

읽고 쓰다]다산과 황상이 내게 준 가르침

안정분 기자 / 입력 : 2022년 12월 06일
『삶을 바꾼 만남』(정민지음, 문학동네, 2011)을 읽고
ⓒ 경북문화신문
만남은 때로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다산과 황상의 만남이 그런 만남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시골 아전의 아들 황상은 스승 정약용과의 만남, 특히 스승이 내린 짧은 글 한편에 고무되어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간다. 일방적 가르침도 일방적 배움도 없다. 스승의 역할도 훌륭했지만 제자 황상의 삶은 가히 감동적이다. 제자의 삶에 무게를 두고 싶은 이유다. 공자평전에서처럼 “교육이란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황상을 통해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스승이 밀어주고 당겨주는 기술이 아무리 좋다 해도 결국 움직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

다산이 강진 18년 유배 기간 동안 키운 제자는 수없이 많았다. 이들 중 끝까지 스승을 진심으로 한 결 같이 섬긴 제자는 황상 한 사람 뿐이었다. 많은 제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삶을 변화시켜 갔다.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까. 그동안 황상이라는 사람을 몰랐다. 책을 덮으면서 스승과 헤어진 지 18년 만에 재회하는 감격적이 장면이 머릿속에 남는다. 아직까지 그 감동이 가시지 않는다. 사람의 만남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 만남, 인연은 스승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다산과 추사에 얽힌 인연으로 황상과 초의(초의선사草衣禪師)의 교분이 이어지고 당대 최고 명류들의 인연이 그물망처럼 얽히는 광경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큰 나무 한 그루의 그늘이 이리도 넓다니...

저자에 대한 이해
책을 통해 저자에 대해 알게 됐다. 나랏말쌈 시리즈인 삼국유사(이재호 옮김, 솔,1997) 책을 통해 저자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확인하면서 저자가 더 각인되기도 했다.
‘삼근계’라는 짧은 문장으로 인해 황상을 처음 알게 됐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문장이 얼마나 강렬했기에? 저자는 가슴을 쳤던 그 강렬함으로 황상의 삶을 추적한다. 저자 또한 여느 저자들처럼 한 단어, 한 문장에 꽂혀 ‘삶을 바꾼 만남’을 펴낸 것이다. 운명처럼. 누군가는 운명이라는 게 자기 의지에 반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이미 문을 어느 정도 열어놓은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게 운명이라고. 자신의 끊임없는 관심을 통해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리라.

저자는 황상의 삶을 통해 현재의 사제지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학생은 있어도 제자가 없다’라는 말이 이를 반증한다. 물질적 교환가치에 의해 거래만 남아 있는 사제관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저자 또한 스승으로서 마음으로 오가던 사제의 도탑고 질박한 정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다산과 황상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읽으면서 자신 또한 그런 제자를 꿈꾸었을 것이다. 아직도 황상 같은 제자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저자는 황상의 삶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런 만남을 흘려보내지 않길 바라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그런 만남을 가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헤아리길 당부하고 있다. 

나의 스승은...
하지만 세상에 그저 이루어지는 관계는 없다. 가는 정 오는 정이 켜켜이 쌓여 관계를 만들어간다. 진심과 성의라야지, 다른 꿍꿍이가 들어앉으면 중간에 틀어지고 만다.(p.17.)

나의 선생님은 관계에 대해 늘 강조하셨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을 통해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관계는 사랑을 담는 그릇이다. 선생님은 내게 따뜻한 관심과 섬세한 배려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황상같은 제자가 되고 싶었다. 황상이 스승 정약용에게 한 말이 곧 나의 마음이다.  
"아무 이룬 것 없이 선생님 제자라 말하기도 송구하지만, 부끄럼없이 살겠습니다. 떳떳하게 살겠습니다."

공부의 자세에 대해 마음에 들어오는 문구 몇가지 적으면서 마무리 한다. 
외우는 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p.37)
어떤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네 삶의 모든 부분을 공부의 과정과 일치시켜라. 세상 모든 일이 공부 아닌 것이 없다.(p.223)
황상은(...) 스승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고 또 새겨 자신의 삶 속으로 옮겨오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다.(p.387)


안정분 기자 / 입력 : 2022년 12월 06일
- Copyrights ⓒ경북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순천향대 구미병원 김대근 교수, 하트세이버 선정
구미시민이 뽑은 2022 구미성과 1위 `2025아시아 육상경기 선수권대회 유치`
경북문화신문 독자위원모집...2월 10일까지
설 명절 공영주차장 무료개방 21일부터 24일까지
`여풍당당 구미` 여성 간부 총 32명, 시 개청 이래 최다
구미시제4선거구 경북도의원 보궐선거 후보자 입후보 설명회
경북문화신문 시민리포터 모집
구미교육지원청, 구미교육 주요업무계획 설명회
김천상무, 2023 티켓북 출시 선수단이 내 손에!
구미도서관, 평생교육프로그램 강사 모집
최신댓글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구미시의 주인은 구미시민입니다. 시민의 주머니에서 구미시 예산이 나옵니다. 그 예산이 눈 먼 돈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형식적인 관리, 감독 기능이 여러 문제를 양산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명분만 잘 세우면 기구와 조직을 만들어 치적이라는 깃발을 올리고, 이해관계인들은 예산에 빨대(파이프라인)를 꽂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 왔기에, 또 그렇게 해야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구미시 예산은 시민들을 위해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쓰여져야 합니다. 내실도 없는 명분과 조직에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예산은 당연히 규모의 경제이기도 합니다. 규모에 따른 최적의 효율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역의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발전 계획과 이에 따른 효율성이 담보된 예산의 세밀한 배분과 집행.. 그리고 무엇보다 철저한 관리, 감독 시스템으로 객관적인 평가와 피드백으로 이어가는 구미시의 냉철한 의지와 실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빨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단체나 조직을 특정 지어 말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예산 운용에 관한 우려의 소견입니다.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 현실을 보자. 시립이 시립 다와야 존재성도 필요성도 인정 받을 수 있다. 기존의 시립 단체부터 제대로 재정립이 되어야 한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옛 표어~ 지금은 하나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자식만 놓자는 얘기인지...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기초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시립의 본 모습이 뭔지,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길 시민으로 바라고 있다.
진심이 느껴집니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당당하게 당선되길 바랍니다.
이달 26일까지 출입 전면 금지입니다.
지산샛강공원은 겨울 내내 접근금지 일까요? 고니는 왔던데 가까이서 볼수가 없더군요ㅠ.ㅠ
강의하는 이태현 선수 덩치에 안맞게 귀엽다요ㅎ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작년 한해 문화의 담론이 생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태생이 불분명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른바 '문화도시추진단'은 구미의 문화를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저는 장님이 만지는 코끼리를 계속 떠올렸습니다. 서로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중력의 작용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말입니다. 생계를 위한 보조 사업, 도시재생 사업, 단체 과시 행사 등 익숙한 문화적 행위들만 나열될 때 시민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경은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화사업이나 행사가 구미의 문화를 위해 배제될 요소는 아닙니다만, 구미의 문화는 이들의 합을 넘어서는 지점이 되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시민들의 문화창조 행위는 발디딜 틈이 없어지고, 보고서 작성에 급급한 지자체의 협소한 시각은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 셈이지요. 지금부터라도 담당 부서 혹은 중간 조직은 문화를 보는 시각을 갖추어야 하리라 봅니다. 시민들의 취미, 학습, 생업을 망라하고 농촌-도시, 계층, 소수자 등을 묶는 문화 밸트에 착안해서 그야말로 시민들의 삶을 문화로 엮어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역 예술인의 아픔이 선홍빛처럼 묻어나는 글입니다. 문화라는 껍데기 가면을 쓴 장사치들의 이권 투전이 지역 문화예술의 현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여기에 지역 예술인들마저 물들어가거나 그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외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이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너무 아쉽네요. 이 기사를 놓쳤군요ㅠ.ㅠ
평화롭습니다.
오피니언
《천자문》 주석에 “도를 지키지 못하여 밖의 .. 
1995년 선산군과 구미시가 도농 통합으로 하나의.. 
누군가 이렇다 할만한 구미문화를 물었을 때 가.. 
여론의 광장
팝스타 올리비아 뉴턴 존을 추억하며  
`갤럭시로 보는 세상, 포토 콘테스트` 삼성 갤럭시 전국 사진 공모전  
sns 뉴스
제호 : 경북문화신문 / 주소: 경북 구미시 지산1길 54(지산동 594-2) 2층 / 대표전화 : 054-456-0018 / 팩스 : 054-456-9550
등록번호 : 경북,다01325 / 등록일 : 2006년 6월 30일 / 발행·편집인 : 안정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정분 / mail : gminews@daum.net
경북문화신문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 영상)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경북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