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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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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때로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다산과 황상의 만남이 그런 만남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시골 아전의 아들 황상은 스승 정약용과의 만남, 특히 스승이 내린 짧은 글 한편에 고무되어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간다. 일방적 가르침도 일방적 배움도 없다. 스승의 역할도 훌륭했지만 제자 황상의 삶은 가히 감동적이다. 제자의 삶에 무게를 두고 싶은 이유다. 공자평전에서처럼 “교육이란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황상을 통해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스승이 밀어주고 당겨주는 기술이 아무리 좋다 해도 결국 움직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
다산이 강진 18년 유배 기간 동안 키운 제자는 수없이 많았다. 이들 중 끝까지 스승을 진심으로 한 결 같이 섬긴 제자는 황상 한 사람 뿐이었다. 많은 제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삶을 변화시켜 갔다.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까. 그동안 황상이라는 사람을 몰랐다. 책을 덮으면서 스승과 헤어진 지 18년 만에 재회하는 감격적이 장면이 머릿속에 남는다. 아직까지 그 감동이 가시지 않는다. 사람의 만남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 만남, 인연은 스승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다산과 추사에 얽힌 인연으로 황상과 초의(초의선사草衣禪師)의 교분이 이어지고 당대 최고 명류들의 인연이 그물망처럼 얽히는 광경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큰 나무 한 그루의 그늘이 이리도 넓다니...
저자에 대한 이해
책을 통해 저자에 대해 알게 됐다. 나랏말쌈 시리즈인 삼국유사(이재호 옮김, 솔,1997) 책을 통해 저자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확인하면서 저자가 더 각인되기도 했다.
‘삼근계’라는 짧은 문장으로 인해 황상을 처음 알게 됐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문장이 얼마나 강렬했기에? 저자는 가슴을 쳤던 그 강렬함으로 황상의 삶을 추적한다. 저자 또한 여느 저자들처럼 한 단어, 한 문장에 꽂혀 ‘삶을 바꾼 만남’을 펴낸 것이다. 운명처럼. 누군가는 운명이라는 게 자기 의지에 반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이미 문을 어느 정도 열어놓은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게 운명이라고. 자신의 끊임없는 관심을 통해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리라.
저자는 황상의 삶을 통해 현재의 사제지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학생은 있어도 제자가 없다’라는 말이 이를 반증한다. 물질적 교환가치에 의해 거래만 남아 있는 사제관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저자 또한 스승으로서 마음으로 오가던 사제의 도탑고 질박한 정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다산과 황상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읽으면서 자신 또한 그런 제자를 꿈꾸었을 것이다. 아직도 황상 같은 제자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저자는 황상의 삶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런 만남을 흘려보내지 않길 바라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그런 만남을 가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헤아리길 당부하고 있다.
나의 스승은...
하지만 세상에 그저 이루어지는 관계는 없다. 가는 정 오는 정이 켜켜이 쌓여 관계를 만들어간다. 진심과 성의라야지, 다른 꿍꿍이가 들어앉으면 중간에 틀어지고 만다.(p.17.)
나의 선생님은 관계에 대해 늘 강조하셨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을 통해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관계는 사랑을 담는 그릇이다. 선생님은 내게 따뜻한 관심과 섬세한 배려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황상같은 제자가 되고 싶었다. 황상이 스승 정약용에게 한 말이 곧 나의 마음이다.
"아무 이룬 것 없이 선생님 제자라 말하기도 송구하지만, 부끄럼없이 살겠습니다. 떳떳하게 살겠습니다."
공부의 자세에 대해 마음에 들어오는 문구 몇가지 적으면서 마무리 한다.
외우는 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p.37)
어떤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네 삶의 모든 부분을 공부의 과정과 일치시켜라. 세상 모든 일이 공부 아닌 것이 없다.(p.223)
황상은(...) 스승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고 또 새겨 자신의 삶 속으로 옮겨오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다.(p.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