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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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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 속에 진행된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 나라 안팎의 뉴스를 모조리 집어삼킨 말잔치 속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민주당 K의원이 언급한 ‘공감능력’은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말인 양, 그것 외는 적실한 표현이 없는 것처럼 다가왔다. 후보자를 향해 젊은이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위기를 모면하려는 동문서답과 현실의 아픔을 모르는 것이었다고. 실제 살아온 삶과 국민 앞에서 하는 말이 불일치하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 후보자에게 제기됐던 각종 의혹들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은 채, 결국 야당 의원의 의혹 확인 질의에 ‘모른다’는 답변만이 쳇바퀴 돌듯 반복되었었지.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의 전범 아이히만을 일러 동갑내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충직한 관료, 악의 평범성’이라고 분석했다. 아이히만에게 ‘옳은 것’이란 ‘히틀러의 명령’이었고, 아이히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경우란 히틀러의 명령을 거역할 때뿐이었다. 반인륜적인 독재자의 명령을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니 끔찍한 일이다. 도대체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이 옳고 그른 사실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 비단 아이히만뿐일까.
아이히만을 양심도 없는 괴물 혹은 악마라고 비난하며, 그를 교수형에 처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양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양심적인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인간의 이성은 그닥 견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사회는 인간의 약점을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굴복을 강요한다. 생각하는 능력을 억눌러 달콤한 쪽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나치 독일은 그들의 문서에 유대인 학살과 수용소 이송을 ‘최종 해결책’이나 ‘재정착’, ‘동부지역 노동’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언어의 사용은 집단의 사고를 오도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능력을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쉽게 악마화되는 것도 알지 못한다. 인간은 태초부터 악한 게 아니라 어쩌면 악하게 만들어져 나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다. 생각하는 능력과 말하는 능력을 너무나 쉽게 빼앗기고 마는 인간의 연약함을 잘 보여준다. 아이히만은 죽는 순간까지 당당한 걸음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으며, 그 믿음이 자기자신의 것임을 확신하면서 교수대로 걸어갔다. 그 순간이 자신의 장례식임에도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회복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이중사고’는 또 어떠한가. 당의 본질적인 행위는 완전히 정직하게 수행된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의식적인 기만을 감수하며 행해지는 사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그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의식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빠지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논리를 사용하여 논리에 맞서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에 맞서는 것, 민주주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자신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여기는 것……‘이중사고’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조차 이중사고를 사용하는 것이다.
검찰개혁을 지상과제로 여긴다는 그는 이제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이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각오는 누구에게나 박수받을 일이다. 억울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이 제대로 숨 쉬고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어느 한 쪽 진영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욱 공감능력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그는 학생들의 상실감을 모른 체하고, 지지자들의 허탈감에 혼자 당당했고, 국민들의 배신감에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남의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책무를 위해 오로지 한 길을 가겠다고 지속적으로 천명하는 데는 모두가 놀랐을 뿐이다. 국민의 삶과 연관된 중대 문제를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투명하게 알고자 하는데도, 이러한 상호작용을 무시하는 위정자, 오로지 자신의 책무만이 존엄하다고 우기는 질긴 사고가 두렵기까지 하다.
한 사람이 국민들을 오랫동안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자신의 결핍 부분을 찾아내기 어렵다면 많은 국민이 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상이 그려주는 나의 초상화를 꼼꼼히 제대로 들여다 보아야 한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저자소개>
선주문학회 사무국장. 공감독서활동가. 대구교육청 1인1책쓰기 지도교사・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