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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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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생산과정’에 얽매이게 된 상황을 우리 자신이 선택한 최선의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외는 배척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사회가 만든 그물망에 여지없이 묶여서 그 세상 속의 톱니바퀴가 되어 돌아갈 수밖에 없는, 또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과 그 삶의 토대인 세상을 억지로 긍정한다. 가끔은 체념도 하지만 결코 그 대열에서 이탈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올바른 것을 지지하거나 바른 삶에 다가가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거나 증오한다.
자유민주사회에서 개인은 고독하고 자유롭게 홀로 서야 하지만, 문유석의 말처럼 ‘좋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목을 맨다. 끝없는 지위 경쟁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하고 여유가 없으며,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향유할 능력이 없다. 우리 스스로가 인간을 대표하는 개별자로서 인간성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자율성마저 상실했다. 게다가 많은 수의 공직자들은 자율성은커녕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그 거짓말은 뻔뻔스러움을 위한 테크닉이 되어 자신의 주변을 감싸고 그 속에서 날로 번성해가고 있다. 진급하고, 당선되고, 선임된다. 모든 언행은 관행을 따르며 관행에 어긋나는 깨어있는 자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부류로 규정한다. 올바른 사회를 위해 잘못된 충동을 제어할 제동장치를 잃어버리고 왜곡된 문화가 뿌려놓은 온갖 쓰레기들 즉 입 발린 교양, 이권을 차지하는 정교한 수단, 친밀감으로 위장된 조악한 커뮤니티 활동만이 기승을 부린다.
지난 여름, 무덥던 어느 날 제자가 찾아 왔다. 활동하는 단체에서 펴낸 책을 한 권 들고 온 Y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을 더 공부하겠다며 여러 지역을 떠돌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단다. 평소에 의지가 반듯해서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터라 무슨 보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나 기대도 되면서 반갑기 그지없었다.
우선 책을 받아 보니 일부러 멋을 감추기 위해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단조로운 표지와 단촐한 목차, 몇 장 안 되는 사진을 배치한 품새가 Y의 성품 그대로였다. 그런데 제목이 범상치 않다. 『좋은 일 하는 것 아닙니다-발달 장애인과 동네에서 친구되기를 상상하며』. Y의 생각이나 성격으로 보아 제목에 반어를 쓸 정도의 책은 아닌 것 같아 드러내기 싫어하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고교 재학시절 Y는 시사토론을 할 때면 자신의 생각을 꾸밈없이 발표했는데, 이를테면 사람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해 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매우 평범한 생각같이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다들 꾸며대고 부풀리는 세태라, 대안학교임에도 불구하고 Y의 주장은 곧잘 친구들에 의해 희화화되거나 무시되기 쉬웠다. 장애인, 성적 소수자, 가난한 사람 등 사람의 숫자만큼 그 모습도 다른데 왜 이들을 분류한 후 틀에 맞춰 부르고 또 특정한 삶으로 규정하느냐 하는 거다.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혹은 결정권을 존중해주자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공감하는 기본적인 감수성이 있는 학생이었다. Y는 이 당시에도 소수자의 삶에 관심을 두고 몇 가지 일을 하고 있었으나 주변의 관심을 끌기란 쉽지 않았다. 졸업 후에도 이런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일을 했던 모양이다. 하루 9시간 정도의 알바를 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에 절은 육신으로 노동권이니 인권이니 따위의 권리를 운운하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졌다 한다. 어느 순간 껍데기만 남은 자신의 모습이 보여 박탈감과 공허함에 빠지는 일도 많았다고. 20대 초반, 인간의 재력과 권력을 향한 욕망을 거부한 Y는 실패와 성공이란 인생의 단순한 이분법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성공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가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낙오자란 대한민국의 뿌리깊은 국민병을 이겨내기 위해, Y는 순전히 자신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에 떨며 그 시기를 지내온 것이다. 어떤 학생은 스펙을 쌓아 대한민국 1%의 블록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과 전략을 수립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Y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안절부절못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닮은 사회를 늘 그리워한다.
진작에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한 Y를 또다시 만남으로써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나의 품위 있는 속물근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장애나 질병이 심한 사람을 ‘잘못된 삶’으로 단정하고 이들을 통해 ‘정신승리’를 누린 것. 우리 사회의 온갖 병폐를 앉아서 지적질한 것. Y 앞에서 못내 부끄러워 받아든 책을 뒤적이다가 속지에 인사랍시고 쓴 글귀를 보고 시야가 부옇게 흐려짐을 느꼈다.
‘언제나 등대같은 존재가 되어주시는……’
<저자소개>
선주문학회 사무국장. 공감독서활동가, 대구교육청 1인1책쓰기 지도교사・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