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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의 세상읽기⑩]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08일(화) 23:16
ⓒ 경북문화신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요구는 매우 다양하고 표출방식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도 국가는 관리능력을 핑계로 민주주의의 외관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그 본질인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들의 실질적 참여는 염두에도 없다. 모든 예산과 정책을 틀어쥐고 중앙정부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다. 지방분권화가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앙집권적 요소가 너무 강해 지방정부는 종속적인 상태로 ‘얻어먹고’ ‘눈치보기’에 바쁘다. 중앙의 정치인들이 지방의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까지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실제 지역주민은 ‘필요한 자치’에 대해 할 일이 거의 없다. 안보나 외교 등 국가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정책은 그렇다 치더라도 복지, 환경, 보건, 치안, 주택 등 지역민의 삶과 밀접한 대부분의 서비스도 중앙의 법규나 예산에 의존함으로써 지방 정부의 운신은 극히 제한적이다.

민주정치 체제는 누구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넘쳐나는 사회다. 가치판단의 객관적 기준은 없고, 각자 보기에 좋은 대로 행동하는 것은 언제나 정당하다. 그래서 전통적인 가치나 도덕은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돈’이 유일한 공통분모가 되어 버렸다. 명예 따위는 돈에 종속된 부차적인 욕망으로 바뀌었으며 모든 것은 돈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돈이나 자산으로만 사람을 판단할 뿐이다. 각자의 재산이 평가되어 ‘돈의 활용가치’가 높은 사람만 정치를 통해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줄 집단에 편입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아무리 국민의 삶에 대해 애착이 있고 통치능력이 있어도 가난하면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갈수록 특정층은 지나치게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져 그 격차는 심하게 된다. 그러니 빈부로 인한 갈등은 심화되고, 갈등의 해소방법은 아득하게만 보인다. ‘모두가 잘 사는데’ 대해선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계층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바쁘다.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개인의 욕심은 참주에게 권력을 주었고, 그 댓가를 바라던 시민들은 참주의 노예가 되어버린 21세기다. 시민들은 참주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참주를 위해 살아간다. 참주와 그 패거리들을 위해 돈을 내고, 참주는 민중이 자기에게 불평하면 압제하고 폭행한다. 많고 많은 의원들과 단체장들을 보라. 표를 쥐고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던 유권자는 결국 힘든 삶을 살게 되었다. 일찍이 플라톤은 민주정체의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시민을 참주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국가 전체가 잘 되도록 만드는 정치인들이 개인의 재산과 명예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 순간, 아무리 그런 욕구가 ‘인간적’이라고 할지라도, 정치인 개인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고. ‘자신을 부인’하고 국가 전체를 위해 살아가고자 해야 하며, 정치인에게 사적인 영역은 없어야 하는데 현대 정치체제에서 과연 이런 정치인을 만나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오늘날 국가의 기강이나 지방정부의 역할은 한마디로 ‘필요할 때는 쓸모없고, 집적여서 도와주는’ 꼴이다. 시민의 아픔이나 고통은 모른 체하고, 생활과 유리된 행사 위주의 이벤트성 모임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편리한 대로 기준을 정함으로써 주민 간 싸움은 끊이질 않고, 집행자 편의에 맞게 대충 만든 법으로 억누르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자치가 불가능한 조건에서 ‘민주주의’는 한낱 수사에 지나지 않음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불평등과 억압적 규제, 소통이 막힌 행정구조 속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꽃필 수 없는 서구에서 수입된 ‘근사한 제도’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얻는 민주적 경험만이 권력자들의 같잖은 위선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의 공기, 물 같은 ’공공‘ 자원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을 기어코 공공소유에서 분리하여 개인화하고 오염시키려는 ’생존경제‘ 파괴 행위를 보라. 설익은 잣대로 삶터를 난도질하는 무책임한 정책을 집행하는 자들에게 미래를 맡겨 놓고, 직접 관계되는 주민들은 참여가 불가능한 채 소외되어 있는 현실은 어떤가.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정책 결정의 질이 정치인들이 행한 결정의 질보다 못하다고 말할 근거는 아무 데도 없다. 그런데도 재정자립도를 앞세워 ’자치‘의 손발을 묶어 국민들을 깜깜이로 만들어 놓았다.

민주주의는 잘 다듬어진 시스템이 아니고, 많은 모임과 시간이 필요하고 무척이나 성가시다. 서로의 의견을 지겹도록 들어야 하고 너무 느리게 돌아간다. 그렇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이것저것 균형을 맞추려면 늘 민주적 과정에 관심을 두고 참여해야 한다. E.H.카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 나가는 것이므로.

참주僭主 : 고대 그리스에서 비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지배자 또는 그러한 독재 체제. 현대적 의미에선 법이나 사람 또는 합법적인 주권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절대 권력, 잔인한 성격을 가진 억압적 독재자.

<저자소개> 
선주문학회 사무국장, 공감독서활동가, 대구교육청 1인1책쓰기 지도교사・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역임.
경북문화신문 기자  gm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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