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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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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집에 칠할 때, 마당의 낙엽을 정리하면서 갤럭시 폰으로 노래를 듣는다. 최근에는 몇몇 미스 트롯 가수들의 노래를 주로 찾는다. 그중 송가인의 모듬곡은 노래 중의 백미라 여겨 오픈곡처럼 먼저 듣게 된다. 김소유 다음 부르는 ‘진정인가요’는 마치 듣지 않으면 안 될 무슨 의무나 있는 것처럼 그것도 정성을 다해 듣는다. ‘한 많은 대동강’ 1절과 2절 사이의 대금 간주는 가인의 목소리를 비교 최상급으로 만들어 주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지금 가인이 전장에 묶여 끌려가는 그이를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빠와 어린 것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는 애절타 못해 절절하다.
흘러간 노래. 이름하여 트로트 풍의 유행가는 젊은 시절 숱하게 불러제낀 이후로는 매스컴에서 흘러나와도 속속들이 반응하지 않았던 그렇고 그런 느낌이었다. 그랬던 옛노래가 언제부턴가 노래의 스토리까지 곰곰 생각하며 듣게 되었다.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노래의 감흥은 큰 울림을 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인의 소리를 통해 재생된 옛노래는 더이상 고리타분한 ‘아버지 시대’의 그것이 아니었다. 가사는 만들어질 때 어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의미를 부여받지만, 전달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 노래가 존재하는 이유를 확고하게 붙잡아 준다. 남과 다른 가인의 울림은 손을 놓고 노래에만 귀를 기울이게 하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나만 그런가 싶어 떨어지는 잎을 바라보니 누런 잎들도 들썩이며 내려앉고 있다. 모든 나무가 숨죽여 노래를 빨아들이는 듯 미동도 않는다. TV에서 가수를 보며 노래를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이다. 오롯이 귀를 통해 그의 노래를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 하룻밤에 요하를 아홉 번이나 건넌 연암의 마음 씀을 알 수 있겠다. 그래, 듣는 감각 하나뿐이니 생생하기만 하다. 퍼지는 듯 오므리면서 꺾이고, 길게 빼다가 탁 꺾는데 소름이 돋는다. 저토록 낮은음에서도 또 휘면서 할 말을 온전히 다 전하는구나.
학교 재직 시절,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음성 훈련을 잠깐 받은 적이 있다. 성악을 전공한 동료 교사를 졸라 억지로 강의에 참여하여 호흡량도 늘리고 몸의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한 연습을 했다. 다음은 허밍을 통한 발성 훈련. 실제 입을 연 상태에서도 그 감각을 가지고 울림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반복과 끈기가 요구되었다. 몇 가지 단순한 요령으로 듣기 불편한 나의 목소리를 단번에 고치고자 기대했던 터라 이런 훈련들은 애초에 무리였다. 그래서 중도하차를 했지만 이때 ‘윤택한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목소리의 감미로움에 경탄하고 그 주인공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목소리의 울림과 파동이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요소임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호흡의 힘듦과 가수의 노래가 그저 흘러나오는 게 아니란 것도.
누가 트로트를 흘러간 옛노래라고 했는가. 그 노래를 큰 울림으로 현재로 불러들이는 송가인. 오히려 그 시대로 끌고 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한다거나 맛깔스럽게 부른다는 말로는 어림없는 칭찬임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몸값이 이 시대 최고라거니 하는 세속적 이야기는 하지 말자. 섣불리 그의 과거의 역정을 들이대며 ‘송가인처럼 노력해야……’하는 자기계발류의 성공담도 그만두자. 다만 그의 노래가 우리 시대에 힘을 주는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나이 든 세대로서 친밀감을 공유하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세대 차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어서 각자가 속한 세대의 특징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나 역시 이따금 아이들에게 꼰대 소리도 듣고 틀딱 계층에 어울리게 가요무대를 즐기기도 하는 축이다. 추석 장사씨름대회, 젊음의 행진, 이상벽, 성룡, 전원일기란 말에 익히 반응한다. 그리고 대중가요는 세대 차를 가르는 선두주자가 아닌가 한다. 지금은 아들 또래와 노래방 갈 일도 없지만, 그래도 한때는 일가가 모두 한 노래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 물론 가게 문을 들어서면서 각기 다른 방으로 향했지만 어쨌든 한 공간에서 고성을 토해낸 건 사실이다. 우리 세대는 트로트로 연결되어있어 그 리듬을 듣기만 해도 편안해지고, 어떤 공감대가 솟아 친밀감을 형성한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무슨 죄나 지은 것 마냥, 못할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치 보며 부르던 동백 아가씨, 누가 울어, 홍도야 울지마라, 처녀 뱃사공, 용두산 엘레지, 한 많은 대동강이 새로운 무장을 하고 거실로 돌아왔다. 어디 그뿐이랴. 아이돌에 숨죽여 지내던 우리의 트로트가 마치 묶였다가 해금이나 된 듯, 흘러간 노래를 마음대로 불러도 좋다는 허락을 새로이 받은 것처럼 당당해졌다.
이게 모두 송가인에게 빚을 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빚을 갚을 차례다. 가수는 지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아픔에 진정으로 감응하면서 우리에게 공감을 호소하는데도, 수구꼴통이니 좌빨이란 철 지난 말에 매몰되어 갈 길 잃은 대한민국의 어르신들.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한 많은 대동강아~’. 지금은 우리 안의 철조망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래서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생존법을 철저히 익히는 일, 그런 지혜로 세상을 포옹하는 일이면 빚을 어느 정도 갚을 수 있으리라.
<저자소개>
선주문학회 사무국장, 공감독서활동가
대구교육청 1인1책쓰기 지도교사・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역임
귀견 감사드립니다~~ 음악에 대해 일가견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저도 송가인 가수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12/04 07:46 삭제
고맙습니다.
전문가적 간파한 내용에 송가인의 새로운 부분을 알게되어
경이롭습니다.참 위대한 송가인!
12/04 06:40 삭제
좋아요
12/04 05:55 삭제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학시리 음을 알고 음악을 이해하는 말씀에 감탄합니다.
송가인의 노래 멈춤없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12/04 05:46 삭제
정말 좋은 말씀 공감합니다!
어릴때부터 트롯을 즐겨들어왔는데요, 솔직히 이미자 선생님 이후 가수들의 트롯은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
트롯이 철지난 퇴물이 아니라, 가장 부르기 어려운 장르이고, 그래서 감흥을 제대로 살리는 가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풍부한 성량, 가창력, 리듬감각, 가사전달력, 음색 등등 모두 갖추지 않으면 트롯은 절대 느낌이 오지 않습니다.
가성으로 넘기거나 악보에 없는 꺾기를 하거나, 부족한 성량을 앰프에 의존해서는 결코 완성될 수가 없지요. 1~2세대 트롯 가수들은 이런 역량을 갖춘 사람들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옛날 노래들이 오래가는 이유이기도 할겁니다.
송가인 가수 등장 이후로 정통 트롯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여러 오디션에서도 정통 트롯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있는 가수들이 선발되기 시작합니다.
이번 기회에 정통 트롯의 부활은 물론이고, 비쥬얼에 치우친 가요계에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가수로 많이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2/04 04:51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