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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의 세상읽기⑮]동의를 얻는 방법

경북문화신문 기자 / gmi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12월 17일
ⓒ 경북문화신문
독일인과 일본인의 전쟁에 대한 기억은 우리로서는 무척이나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통해 민족의 성격을 규명하기도 하고 그 나라의 문화 본질에 접근하려고 시도한다. 전후 나이든 세대는 거의 모두 친유대주의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60년대 후반부터 많은 독일의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의 과거를 비판한다. 과거에 대해 침묵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증오하며, 자기네 부모의 비겁함을 보상하려 하고 저항한다고 한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비록 전쟁은 끝났지만, 미국은 스스로가 말하듯 가장 많은 ‘보통 시민’을 죽이거나 치명적인 장애를 입힌 나라가 되었다. 원폭은 섭씨 수백만 온도로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반지름 2km 안의 사람도 건물도 남김없이 수증기로 증발시켜 버렸다. 그 외 지역 사람들은 모두 노출부에 화상을 입거나 죽음의 재로 인한 고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원폭 피해자 1세 그리고 2세가 바로 그들이다. 우리가 눈감고 있는 지금도 이들은 백혈병이나 암 등 평생에 걸쳐 건강을 해치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히로시마 시는 원폭의 고통을 잊지 않겠다며 ‘평화기념 공원’을 만들었다. 피폭 이후 불행을 극복하고 국제적 평화도시로 ‘재생’한 모습을 꾸준히 알린 덕택에 한 해 100만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평등과 희망이 가득한 평화! 그러나 평화에 대한 온갖 아름다운 수식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킨 책임과 원폭을 투하한 책임’ 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외치는 참다운 평화는 허구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전범에서 천왕을 제외했다든지, 일제에 의해 끌려간 한국의 원폭 피해자에 대한 차별,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한 책임은 입밖에도 내지 않는 알맹이 빠진 평화만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폭력의 원천을 무시하고 과연 평화라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고인을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공원은 그야말로 속세의 번뇌를 잊게 해주는 놀이공원에 불과한 것이다.

작금 구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왕산 공원 논란은 또 어떠한가. 안중근 의사의 왕산에 대한 평은 이랬다. “허위 씨와 같은 진충갈력 용맹의 기상이 동포 2천 만민에게 있었더라면 오늘의 국욕國辱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관은 자기 생각만 있고 나라 있음을 모르는 자가 많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한 많은 애국지사를 두고 어떤 특정 인물에 대한 얘기만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온 나라의 국민이 나라를 위한 기상을 가지지 않더라도, 지역민이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노라 앞장선 사람들은 역사적 인물들의 고귀한 정신과 교훈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고관들만이라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지사들의 참뜻을 열에 하나라도 기억한다면, 섣불리 그들을 불러내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용해서는 안 된다.
독립운동을 한 분들은 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진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오만함을 바로 잡고 이 땅 후손들의 역사에 대한 오도를 꾸짖고, 종내는 민족끼리 서로 화목한 이웃으로 오순도순 살아갈 터전을 만들기 위해 주저없이 몸을 던졌음을 왜 모르는가. 그러므로 우리 후손들은 그분들의 삶 전체를 조감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재에 소환해야 한다. 그분들의 고통과 아픔, 눈물과 애환 심지어 무엇을 기대하고 기뻐하였는지에 대한 감수성없이 지금처럼 단순하고 몰역사적인 시각으로 ‘무슨 공원’에 대한 다툼을 벌이는 것은 얼마나 무지스러운가.
과거의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역사에서 배우려는 진지한 태도가 없다면 일본인들의 원폭에 대한 기억과 진배없다. 원폭으로 그들은 가해행위를 숨기고 피해자로서의 얼굴만 강조하면서 침략의 원죄를 덮으려 하니 가증스러운 일이다. 가히 지옥을 방불케 한 원폭의 피해자임을 자처하다 보니, 위안부니 난징 대학살 같은 것은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하여 기억에서 쉽게 지우려 한다. 이러한 일본에 대하여 냉정하고 객관적인 역사 판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나치의 대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이 저지른 야만적 범죄 앞에서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저지른 전례 없는 범죄들을 되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 범죄는 독일인의 현재 역사의 일부이며 또 장래에도 독일인의 역사의 일부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는 두고두고 거듭해서 말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아렌트의 말마따나 확장된 심성을 가지고 확장된 사고를 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였다. 역사를 단견으로 이해하는 정치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성싶다. 사고가 넓게 확장될수록 판단은 일반화에 가까워지고, 일반화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소개>
선주문학회 사무국장, 공감독서활동가, 대구교육청 1인1책쓰기 지도교사・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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