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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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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과거는 기억 속에 남는다. 다가올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우리의 기대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과거나 미래는 모두 현재라는 시간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과거, 현재, 미래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현재적 시간의 세 모습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어쨌건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와서 미래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멈추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주관적 인식과 결합되었을 때의 시간과 사뭇 다르게 나타날 때, 그 이해는 어렵고 때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이 세상의 시계가 모두 없어져도, 모든 물질이 사라진다 해도 어디서나 똑같이 시간은 흐르는 줄 알고 있었지만,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관측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제 새로운 10년이 열렸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무엇이 다른 걸까. 그 차이가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소망을 빌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더 나은 생활을 기대하는 것인가.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들이 잘 안되면 새로운 해를 기다리며 또다시 성취를 기다린다. 하다못해 계약직에라도 취직하여 무직자의 인생에서 벗어나기, 계약직인 사람들은 무기직이라도 되어보기, 건강이 나쁜 사람은 금연하기, 자영업을 하면서 힘든 한 해를 보냈다면 큰돈 좀 만져보기, 취업 준비생과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은 꼭 합격하기, 5G 휴대폰으로 바꾸기, 어떻게 작은 평수라도 내집 마련하기, 심지어 풍전등화같은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등의 소망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결국 새해 다짐이나 소망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든 나를 위해서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사람다운 가치를 받으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토록 소망했고, 다짐하고, 약속하고 계획했던 일들이 이루어지거나 첫 한 달을 지나 지속적으로 변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수 있다면 분명 좋은 일이고, 자신감도 충만할 일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의지는 그다지 강고하지 못해 너무나 자주 새해 다짐의 좋은 뜻을 쉽게 저버리고 만다. 그리고 새해의 산뜻한 출발의 시간은 어느덧 연례행사의 기록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알려진 시 「황무지」의 시인 T.S.엘리엇은 현대 시인 가운데 시간의 의미와 존재에 대해 깊이 성찰하였다. 그는 영원한 현재가 과거와 미래, 시작과 종말의 구분없이 이뤄진다고 노래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것과의 공존,
아니 끝이 시작에 앞서고,
시작의 앞과 끝의 뒤에,
끝과 시작이 언제나 거기 있었다고 말할까.
그리고 모든 것은 항상 현재다.(「네 사중주(Four Quartets)」 중에서)
비록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회상하는 우리의 이해 태도 속에는 과거적인 시간이 지금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듯이 그렇게 ‘현재적인 방식’으로 현존한다고 시인은 파악한 것이다. 미래의 시간 역시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이해 태도 속에서는 미래적인 시간이 지금 눈앞에 전개되고 있듯이 그렇게 ‘현재적인 방식’으로만 현존한다고 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뻘 되는 워렌 버핏에게서 가장 중요한 시간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버핏은 자신의 손바닥보다 작은 빈칸으로 되어있는 종이 달력을 보여주면서, ‘달력을 빈칸으로 채우라’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누구나 ‘시간을 벌려고’ 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살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나는 버핏처럼 투자를 한 후 기다렸다가 큰 수익을 창출 하는 일 따위를 할 위인은 아니다. 아니 아예 주식투자를 모르고, ‘성공 가능성 있는 기업’을 알아보는 혜안 같은 것은 없다. 다만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버핏이 시간만큼은 살 수 없음을 알고, 시간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고 소중히 사용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1/나이’의 몫으로 할당된 새해의 1년이란 시간을 하루하루 풍족히 쓰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에 한 칸씩 채워나가고자 한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그들과의 부에 대한 측정불가한 불평등을 평등한 시간으로 상쇄하고자 하는 나의 2020년 꿈에 스스로 감탄할 뿐이다.
<저자소개>
선주문학회 사무국장, 공감독서활동가, 대구교육청 1인1책쓰기 지도교사・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역임.